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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야 한다.” - 집중기획/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➄

대선을 앞두고 87년 체제를 넘어설 새로운 개헌안 마련에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권력 분산’과 ‘국민참여 확대’의 방향으로 개헌해야

87년 이후 대통령 8명 중 5명, 탄핵·구속·자살 등 비극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으로 선출된 5년 단임 대통령 8명 중 4명은 퇴임 후 비리 혐의 등으로 구속됐고 3명은 재임 중 국회에서 탄핵소추당해 2명이 파면됐다. 1명은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는 현상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사법부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져온 부작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대선에서 이긴 세력이 모든 권력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져온 폐단은 심각하다.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배경으로 행정부에서는 대통령 비서관이나 비선 실세가 내각 위에 사실상 군림하는 행태가 반복됐고,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국회 다수당과의 충돌로 갈등과 파국의 정치가 되풀이됐다. 승자는 정치 보복을 하고, 패자는 이를 피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정권을 빼앗으려 하다 보니 “여야 모두 대통령 권력 갖는 데만 혈안”이 된 극단적 대결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그럼에도 비상계엄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탄핵반대’의 입장으로 결집한 것은 “저들한테는 절대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직을 넘겨줄 수 없다.”는 거대 양당의 극한적 대결 정치의 선동에 휘말려 들었기 때문이다. 12.3내란사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 한 명이 나라를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87년 체제가 만든 거대 양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87년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 승자독식’의 정치를 끝내고 ‘권력분산과 민주주의의 강화’를 향해 나아갈 중요한 계기이다.

권력 분산, 양당 독점 해체, 지방 분권, 국민참여가 보장되는 개헌이 되어야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 도입’과 ‘국민 기본권 보장’ 등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권력 집중 현상과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라는 한계도 가져왔다. 87년 이후 모든 정부는 나름대로 87년 체제의 변화를 위한 개헌을 시도했다. 노태우 정부는 ‘내각제 개헌’을 축으로 3당 합당을 성사시켰고,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은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집권에 성공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거부당한 이후 ‘권력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이명박 정부도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행정 구조 개편’을 포함하는 개헌안을 띄웠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핵심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다. 하지만 개헌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87년 체제에 대해 ‘이대로는 안 된다.’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거대 양당의 기득권과 당리당략, 권력독점 욕망이 개헌에 대한 합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12.3 내란사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87년 체제가 파탄에 이르렀음이 명확히 드러난 이상 개헌은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시대의 과제이다. 87년 헌법이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한 반면, 시민사회나 일반 국민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기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개헌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개헌의 내용을 놓고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분권형 권력 구조 도입 △양당제 해소와 정치적 다원화 △지방분권 확대 △국민 기본권 강화 등을 제안하고 있다.

“개헌 이룰 절호의 기회... 개헌안 마련에 국민 참여의 길 열어야”

민주당을 비롯해 진보당·조국혁신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 등 야5당은 지난 5월 9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통한 임기 내 개헌 추진을 약속했다. 국민의힘도 개헌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국민투표 과반 동의’라는 개헌의 높은 문턱을 넘으려면 여야 간 합의는 물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40년 가까이 이루지 못한 개헌을 성사시킬 수 있는 국민적 추진력을 가지려면 개헌안 마련 과정부터 국민들이 참여하는 ‘국민참여형개헌’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따라 대통령이나 국회가 아닌, 국민들이 개헌 논의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확산하고 개헌에 대한 이해증진을 위한 교육과 홍보, 다양한 토론회가 이뤄져야 한다. 국회가 주도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여론조사와 공론조사 등을 진행,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안 초안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87 체제가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물인 12.3내란사태를 종식시키고, ‘승자독식, 정치양극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권력 분산과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개헌’이다. 2026년 전국동시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가 가능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개헌을 하지 않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수하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