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에서 시작한 산사태
환경
지난 7월, 약 650mm의 비가 내린 옥종에는 많은 피해가 있었다. 1년에 내리는 비의 절반이 3일간 쏟아졌다. 덕천강 제방이 무너져 산성마을 앞 비닐하우스가 부수어졌고, 두양리와 종화리의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겼다. 대책은 무엇일까? 두양천의 경우를 살펴보았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대책 마련되어야
이곳은 대부분 경사도 20°가 넘는 급경사지다. 빗물은 순식간에 모인다. 하천 바닥은 99% 이상이 자갈로, 이것은 물이 매우 빨리 흐른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약 73%가 장마철에 흐른다. 즉 두양천에는 장마철 짧은 기간에 많은 양의 물이 순식간에 모인다는 것이다.
일상이 된 집중호우, 대책 마련해야
환경

[집중기획] 2026년 지방 선거를 생각한다<2>/ 하동군 경제 ①, 무엇이 발목을 잡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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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제 비만 오면 가슴이 철렁해요.”
우리마을두루두루
8월 7일 전북지방환경청 앞에서는 ‘새만금신공항 부동의 촉구 집중행동’이 있었다. 1,278일 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새만금신공항이 지어질 경우, 무안공항보다 610배의 조류충돌 위험이 있으며 세계유산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 수라갯벌이 사라지는 생태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7월 26일 부산에서는 24개 단체와 약 2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가덕도신공항 백지화를 촉구하는 부산 집중행동’이 있었고, 8월 4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는 6월 24일부터 시위를 하고 있던 김현욱 집행위원이 시위 도중 경찰에 의해 팔다리가 들려 강제진압 당하는 일이 있었다. 7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는 117개 시민단체와 노동·농민단체로 구성된 ‘제주제2공항 강행저지도민회의’가 “내란세력이 저지른 반민주적 행태의 사업은 백지화되어야 한다.”며 지난 10년의 해묵은 갈등을 풀어 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7월 10일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는 ‘국립공원 케이블카 전면 백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으며, 8월 9일 전국 8곳 명산에서는 케이블카 건설 백지화를 위한 ‘생명평화의 봉화 공동행동’이 있었다. 8월 6일 세종시 환경부 앞에서는 470여 일간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보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의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4대강 보의 완전 개방과 철거를 다시 공론화하겠다는 것은 이재명 정부가 공약했던 4대강 재자연화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김성환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같이 내란종식 이후 들어선 이재명 정부도 생태, 기후위기, 탈성장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이전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망을 주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공항 말고 갯벌’, ‘전쟁 말고 평화’, ‘자본 말고 생명’, ‘4대강 재자연화’, ‘지리산을 있는 그대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성, 환경성, 경제성이 모두 결여되어 있음에도 현정부에서도 계속 건설을 강행하려고 하여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지난 2월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민주당이 중도 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 진영이 새로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기자들의 질문에 “민주당은 원래 진보 아니다.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 보수이다.”라고 했다.
‘왼쪽날개’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기자의눈

북천면 남포마을 느티나무
독자기고

[작고 느린 삶] 긴 호흡이 담긴 커피
독자기고
한국 근현대사 다큐 영화의 구자환 감독과 함께 다음으로 간 곳은 화개면 부춘리 인근 섬진강 뚝방과 하동지역 민간인 학살 현장이다. 이 학살현장 위쪽에는 1950년 6.25 한국전쟁 직후의 화개전투에서 희생된 학도병을 기리는 추모공원도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동, ‘별천지’ 하동이지만, 전국 곳곳이 그러하듯 고통과 트라우마를 간직한 곳이 바로 우리 곁에도 있다. 불편하고 두려워 회피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 정직하게 대면할 우리 역사다.
하동 읍내 국민보도연맹 본부가 있던 건물을 본 뒤 우리는 섬진강변을 따라 화개 쪽으로 올라갔다. 구 감독은 화개면 부춘리 인근 섬진강 뚝방에서도 제법 많은 양민 학살이 있었던 걸로 들었다 한다. 구 감독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2006년 경 진실화해위 조사 때 부춘리 인근 마을에서 그 이야기를 해준 노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녹취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그 이후에 다시 마을을 찾아갔는데, 예전 그 노인을 아무도 모른다했다 한다. 구 감독의 느낌으로, 처음 마을에 구감독 등이 찾아간 것부터가 그 분에게는 ‘비밀이 들킨 기분’처럼 보였다 한다. “그걸 어떻게 알고 여기 왔소?” 아마도 이런 정서였을 터.
널리 알려진 바, 학살의 피해자나 목격자들은 학살 그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자칫 (누군가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제2, 제3의 피해를 입을까 봐 두려움에 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 한동안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풀어 놓긴 하는데, 그러다가도 별안간 ‘잘못하면 또 당한다.’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말을 자제하거나 완곡어법으로 표현하기 일쑤다. 여하간 팩트는, 전쟁 직후에 화개면 부춘리 섬진강변 뚝방에 경찰들이 사람들을 세워놓고 총살하는 장면을 본 사람이 있다는 것! 아쉽게도 우리는 2025년 현재 그 어떤 증언자도 만날 수 없어 부춘리 뚝방 인근은 더 자세히 답사할 수 없었다.
하동 ‘다크투어’ 역사 기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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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 없는 군민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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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산사태 현장… 건드린 산은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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