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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다크투어’ 역사 기행(3)

화개 현장을 둘러본 뒤 구자환 감독과 나는 마지막 현장인 매티재로 달려갔다. 두 현장은 약 25킬로미터 정도 거리다. 매티재는 광양시 진월면과 진상면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고개로 백운산 끝자락이다. 그러나 아픈 역사의 흔적을 굳이 남기지 않으려는 듯, 매티재라는 팻말 하나 없었다. 만일 누군가 매티재 양민 학살 현장을 찾으려 한다면 십중팔구는 지나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구 감독은 예전에 매티재 현장에 와 본 적이 있었기에 기억을 잘 더듬어 마침내 입간판 하나를 찾아냈다. 입간판은 현재 누군가 경작 중인 밭 한편에 있었고, 강한 햇살에 바래어 그런지 거의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 살펴보니, 그 내용은 화개 현장의 그것과 거의 같았다. 다만 장소만 다를 뿐! 매티재 학살 현장의 공식 주소는 전남 광양시 진상면 비평리 산 116-23번지다.
내 나름 종합하면, 1950년 한국전쟁 전후로 하동에서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되어 군경에 의해 끌려가 학살된 장소는 크게 세 군데다. 하나는 하동군 화개면, 다른 하나는 진주시 명석면, 또 광양시 진월면/진상면 매티재다. 그런데 이 매티재엔 하동지역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만 묻힌 게 아니고 여순사건 희생자들도 제법 묻혀 있다.
2025년 1월 21일엔 광양시와 전남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여순위원회) 주관으로 매티재(비평리 산 116-23번지)에서 유해 발굴을 시작하는 개토식이 있었다. 개토식에는 유족회 회원들을 비롯 전남도, 광양시, 하동군 관계공무원 40여명이 참석했다. 그렇게 본격 발굴 작업이 개시된 이후 최근까지 9구의 유해와 탄피, 고무신 등 46점의 유류품이 수집됐다. 9구의 유해는 정확한 DNA 분석이 이뤄져야 비로소 유해가 여순 사건 희생자인지 하동 국민보도연맹 희생자인지 판명될 것이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진화위)는 2024년 5월,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제78차 회의에서, 한국전쟁 직후 하동 지역민들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경찰 등에 희생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하동지역 희생자 유족들이 과거사 조사에 응하면서 제적등본, 족보, 생활기록부, 신청인과 참고인 등 진술 등 기초 자료를 제출했던 것! 그 결과 진화위는 1950년 7월 하동지역에 거주하던 주민 30명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요시찰인(사상이나 보안 문제와 관련해 당국의 감시를 받는 사람)이라는 이유 등으로 예비검속돼 광양시 진월면 매티재,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 등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됐음을 확인했다. 진화위는 국가와 하동군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 추모사업 지원, 역사기록 반영, 평화인권교육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진화위 권고에도 불구, 아직까지 유해 발굴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추모사업 지원도 부진하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듯이 비록 아프고 쓰라린 역사지만 결코 침묵하거나 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말하고 기록하고 애도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평범한 민초들에게 집단 트라우마를 안겨준 폭력과 공포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동군 당국과 시민사회가 책임감을 갖고 추진해야 할 과제는 이렇다.
첫째, 한국전쟁 전후로 하동지역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모두 확인, 기록하여 보고서를 만드는 일,
둘째, 희생자 가족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사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예방 조치를 취하는 일(특히, 부당한 상부명령에 군경이 거부할 권리 보장),
셋째, 화개 현장, 명석 현장, 매티재 현장 등 하동의 민간인 희생 현장에 추모비 건립 등을 통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후손들을 위한 역사 교육 현장으로 만드는 일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