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m2 면적의 서울에는 약 933만 명, 675m2 면적의 하동에는 약 4만 명이 산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 현상은 지역소멸의 위험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저출생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높은 생활비와 집값, 치열한 경쟁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OECD는 한국의 경우, 2023년 기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수가 0.7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출산율을 유지할 경우 향후 60년간 인구는 절반으로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켜야 한다. 그 해결책으로 읍면자치의 실현이 최우선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읍면자치 통해 삶의 질 개선해야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하승수 대표는 “면 지역 인구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수도권 일극 집중 해소를 거론하는 것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지역위기의 해법은 면 자치를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면 지역의 인구가 더 이상 유출되지 않도록 하고 인구를 유입하려면 생활여건을 개선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대책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도록 자치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하승수 대표가 하동을 찾아 ‘찾아가는 읍면자치 설명회’를 하고 있는 모습. 10명 이상의 사람과 강의장소만 준비되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읍면자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올해 말까지 진행할 예정이며 신청 및 문의는 010-7904-0224로 하면 된다.
하승수 대표는 “지자체마다 발전계획을 군청에서 세우다 보니, 주민들도 모르는 서류상의 계획이 나오기 쉽다. 이런 하향식의 사업들
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개발사업, 선심성 사업, 일회성 사업들이 많으며, 지역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치권 회복이 필수다.”라며 읍·면자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면민이 직접 지역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하고,
의료협동조합으로 의료문제 해결
2025년 8월 14일, 충북 옥천군 안남면에서는 ‘면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인구 1,300명, 옥천에서 가장 작은 면인 안남면 주민들이 모
여 지역 중장기 발전계획을 논의했다. 이미 이 지역은 2006년에 면민 주도로 종합발전계획(1차, 2007~2024년)을 수립하고 작은 도서관, 마을버스, 공동체 장터, 작은 목욕탕, 공동체 밥상 등 수많은 실험을 해 왔다. 안남면은 대청댐 물이용 부담금을 재원으로 하는 주민지원 사업비를 매년 5억 원가량 배정받으며 지원금의 30~40%를 면 전체 발전 사업에 사용한다. 200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마을순환버스 역시 이 자금을 이용해 구입했다.
일련의 과정에는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개 마을 이장과 각 마을 총회에서 추천한 1명, 그리고 이들 24명이
추천한 사람이 추가되어 40명 내외의 위원들로 이루어진 지역발전위원회는 주민 대의기구 역할을 수행하며 주민총회 개최 등을 통해 지원 사업비의 사용계획을 수립한다. 면장과 공무원들은 옆에서 배석하며 기록하고 자문하는 역할 정도를 한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의 힘으로’ 해결하는 안남면은 주민자치 1번지로 꼽히고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는 약국 하나 없어 읍내로 가야만 했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2015년에 주민 약 300명이 모여 ‘홍성 우리마
을 의료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같은 해 8월에는 ‘우리동네의원’이 문을 열었다. ‘우리동네의원’은 치료뿐 아니라 사전예방기관으로도 활약하며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주민자치의 힘으로 해결한 훌륭한 사례이다. 안남면과 홍동면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동에서는 기대할 수 없을까?
법제화와 자체 예산 마련...갈 길 멀지만
주민자치회로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 시작
화개장터 인근에는 ‘화개면 별천지 문화마당’이라는 주민센터가 있다. 이곳에는 스마트 도서관, 북카페, 스터디룸, 장난감은행, 공유
부엌, 멀티뮤직룸, 유튜브 방송실, 공구대여보관함 등 각종 편의시설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요가, 서예, 한국어교실, 그림책만들기, 방과후 돌봄 등 다양한 주민자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매년 ‘꽃같이 아름다운 100세 잔치’ 행사를 하는데 20개 마을이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는 경로잔치이자 마을 화합의 장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화개면 주민자치회가 있다.
별천지 화개면 문화마당 1층 모습. 스마트도서관, 북카페와 장난감은행이 센터를 찾는 손님을 제일 먼저 맞이한다.
2020년에 하동군에서 최초로 화개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회로 탈바꿈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각 기관이나 단체의 장들이 위원이 되어 면의 자문기구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주민자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정부는 2013년부터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주민자치회는 20명에서 50명의 위원을 공개모집한다. 화개의 경우, 이장단을 비롯한 기관이나 단체에서 참여할 경우, 그 인원을 2명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어 위원 구성에 다양성을 기하고 있다. 이렇게 선정된 위원들이 주민 총회를 개최하여 사업계획과 예산을 편성하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주민자치회의 목적이다.
별천지 화개면 문화마당(쌍계로 28)에 비치된 홍보지. 스마트도서관, 북카페, 공구대여, 장난감은행, 다양한 동아리 활동 등 주민자치회에서 다채롭게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풍부하다.
그러나 현재 주민자치회는 이를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지 못하다. 주민자치위원으로서의 역할은 막중한 반면, 그에 따른 권한이나 위상
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 없다. 자체 예산도 없다. 주민참여예산제와 연계하여 소액의 보조 사업을 하는 정도에 그치거나 공모사업에 응모하여 예산을 따오는 형국이다 보니 일회성 사업이 많다. 이런 조건으로는 지역의 난제를 주민의 힘으로 해결하며 그 효능감 속에 주민 참여가 확대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2013년 이후 시범사업으로만 존재해 오고 있는 주민자치회를 법제화시켜 법적인 지위를 획득하고 권한을 분명히 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자체 재원 마련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고향사랑기부금, 지역소멸대응기금, 주민참여예산 등을 활용하여 주민자치회의 독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하동의 13개 읍면 중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한 곳은 화개, 청암, 양보, 북천, 금성, 금남, 옥종 7곳이다. 주민자치권 확대는 이재명 정부의 52개 국정 과제 중 하나이며 주민자치회를 법제화하여 자치권 확대에 힘쓸 계획이다. 지역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지역 여건은 빠르게 개선될 것이다. 살고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새로운 인구도 유입된다. 인구 4만 선이 무너질 위기에 봉착한 하동, 문제 해결의 핵심은 ‘주민자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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