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민에게 권력을」(하승우, 2017, 한티제)와 「듣도 보도 못한 정치」(이진순 외, 2016, 문학동네)를 바탕으로 스페인의 경험을 재구성하여 작성하였다. 두 책은 부제 ‘시민의 정치를 위한 안내서’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유쾌한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저항, 시민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페인은 1936년 스페인 내전 이후 집권한 프랑코 독재정권이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독재자 프랑코 사망 후에는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여 ‘78년 체제’를 만들었고,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였다. 스페인의 정치제도는 내각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이고 지역정당과 선거연합을 인정하고 있다.
‘15M운동’과 ‘포데모스’
스페인의 정치변화는 바로 이 ‘78년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포데모스’의 등장 배경에는 ‘15M운동’이라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2011년 5월 15일, 정부의 긴축정책과 높은 실업률, 기업의 구조조정, 은행의 주택 강제압류 등에 분노한 스페인 시민들은 스스로를 ‘인디냐도스’(분노한 사람들)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15M운동’은 스페인의 권력을 양분해온 국민당과 사회노동당에 맞서며 시민들의 집을 압류하던 은행과 유럽연합(EU)의 긴축정책에도 저항했다.
‘15M운동’은 스페인 전역에 걸쳐 650~800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참여할 정도로 높은 열기를 띠었다. 이후 시민들은 전국 곳곳에 지역별 모임을 만들어 주거와 실업, 환경문제 해결, 부패척결, 정치개혁을 위한 다양한 요구를 쏟아냈다.
‘15M운동’은 진짜 민주주의와 진정한 사회변화를 요구했고, 이 틀 속에서 다양한 시민·사회운동, 풀뿌리 지역네트워크와 활동가들, 진보적인 군소 정당들이 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기득권층이 장악해온 사회를 해체하고 재건하는 실험들을 진행했다. 전국 정당인 ‘포데모스’와 지역의 선거연합 정당인 ‘아오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엔 코무’ 등은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났다.
‘아오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엔 코무’
‘포데모스’ 등의 정치실험은 기성정당이 독점해온 정치인의 후보지명권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정치인의 특권을 포기하게 했으며, 진짜 민주주의를 내부에서부터 실현하기 위해 플랫폼을 만들어 시민들을 폭넓게 참여시켰다. ‘포데모스’는 창당한 지 1년 만인 2015년 총선에서 21%의 득표율로 제3당이 되었으며 ‘아오라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엔 코무’는 2015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여 마드리드시와 바르셀로나시의 시장을 탄생시켰다.
시민이 권력과 민주주의의 주체로
시민저항 운동을 배경으로 탄생한 시민정치 ‘포데모스’, ‘아오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엔 코무’의 목표는 시민들이 권력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정치무대에 오르도록 해서, 누가 권력을 잡든 예전의 기득권 정치로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선거 이후에도 시민참여와 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조직의 중요한 과제였다. 시민이 권력과 민주주의의 ‘관객’이 아니라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민들이 시와 시의원을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시장이 되었는가?
아다 콜라우는 2015년 지방선거에서 ‘바르셀로나 엔 코무’ 소속으로 출마하여 바르셀로나의 시장이 되었다. 그녀는 정치인이 아니라 주거권 운동을 해 온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이다. 아다 콜라우 시장 역시 대출금을 갚지 못해 거리로 나앉게 된 주택담보대출 피해자였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2009년 ‘주택담보대출 피해자를 위한 플랫폼 빠(PAH)’를 창립했다. 이후 5년간 빠(PAH)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집을 잃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싸웠다. 스페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했던 2012년에는 매일 500가구가 거리로 내몰렸고, 2015년 현재 은행에 압류된 빈집이 340만 채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다 콜라우는 시장이 된 후에도 SNS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모든 일정을 공개하고 직접 시민들과 소통한다.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에 “투명한 일정 공개는 언제나 우리의 정직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빠(PAH)로부터 주거권 보장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요청를 받고 자신의 블로그에 노력하겠다는 뻔한 답이 아닌 구체적인 정책으로 답변했다. 그 내용은 주택담보대출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 자금지원의 규모와 지원요건 완화, 빈집제공 조례를 위반한 은행들에 대한 과태료 부과 조치 강화, 취약계층의 수도·전기·가스비 지원 및 관련 업체들의 단전·단수 조치 유예 요청 등이다.
복종에 의한 통치-윤리규약
아다 콜라우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모든 일정을 공개한 것도 윤리규약에 따른 것이다. 스페인의 ‘15M운동’은 양당 구조로 인한 기득권층의 나눠먹기식 장기집권과 부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로부터 시작됐다. ‘15M운동’은 스페인의 경제위기를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서 찾았고, 그 모순을 심화시킨 것이 기득권층이라고 봤다. 기득권층의 부패에 분노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의 부패를 막을 방법도 찾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포데모스’와 ‘바르셀로나 엔 코무’, ‘아오라 마드리드’ 모두에게 강조된 것이 바로 윤리(ethic)였다. 시민들이 토론하며 만든 윤리규약(ethic code)은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책임과 의무를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윤리규약을 요약하면 투명행정, 부패척결, 특권폐지, 시민권 회복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후보시절 선거공약을 지킨다 ▲누구와 만나 무엇을 논의했는지 업무상 일정과 회의록을 공개한다 ▲재산 내역을 공개하고, 이것을 공직을 떠난 뒤 3년 후까지 적용한다 ▲시민의 민주적인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일한다 ▲취약계층과 정기적으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응답한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