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섬진강, 남해바다를 개발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겠다는데...
“하동군이 지난해 관광객 500만 명 시대를 돌파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10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여 ‘머무르고 휴양하는 체류형 관광지’로 탈바꿈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할 것이다”
이 말은 당연히 윤상기 군수의 말로 생각하겠지만, 전임 조유행 군수가 2008년 섬진강변 야간 조명시설 설치사업(사업비 80억)을 시행하며 한 발언이다. 윤상기 군수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금오산 케이블카도 설치하고,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궤도 열차도 운행할 계획이고, 섬진강 뱃길 복원도 곧 시작할 예정입니다. (중략) 관광도시라고 하면 그 기준점이 외국인 관광객이 천만 명 와야 합니다. 저 역시 하동에 외국인 관광객 천만 명을 오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2019. 4. 10. 여행스케치 인터뷰)
국내 관광객 1000만 달성도 요원한 판에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를 언급할 만큼 지리산과 섬진강, 남해바다를 개발하여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은 하동 지자체장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특히 섬진강은 산이나 바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탓에 집중적으로 개발대상이 되어 왔다. 지금은 난개발과 예산낭비의 대명사가 된 ‘4대강 프로젝트’와 유사한 개발정책이 끊임없이 섬진강을 위협하는 이유이다.
섬진강 뱃길복원 및 수상레저 기반시설 조성사업 조감도(2020년)
2009년 11개 지자체장들, 섬진강 포함 ‘5대강 사업’ 요구해
지난 2009년 1월 임실, 광양, 구례, 하동 등 섬진강권 11개 지자체장들은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간담회’에서 “섬진강을 포함해 4대강 정비사업을 5대강 정비사업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이 요구한 예상 사업비만 무려 7조 4640억 원에 이르는데, 이중 경상남도와 하동군이 제시한 섬진강 개발사업비는 14개 사업 8232억 원이다.
2009년 하동군 예산 3078억의 2.67배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섬진강 개발에 쏟아붓겠다는 이 계획은 다행히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되면서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때 입안된 14개 섬진강 개발사업이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으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모습만 바꾼 채 살아남아 섬진강을 난개발의 위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섬진강과 관련된 몇 가지 개발사업만 살펴봐도 확인된다.
•
두우레저단지 조성사업 : 금성면 궁항리, 고포리 일원 82만 평에 골프장, 호텔, 테마 빌리지, 주거시설을 포함하는 ‘웰니스 라이프스타일 빌리지’라는 위락·관광·레저 복합단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사업비 3139억. 사업기간 2020~24년)
•
화개장터 10리 벚꽃길 자연형 하천복원 사업 : ‘화개천변 경관보전 및 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2012년부터 시작되었다. 하동군은 이 사업을 통해 향후 10년간 생산유발 581억, 부가가치유발 230억, 고용유발 562명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홍보하고 있다. (사업비 확인 불가) 이미 작년 8월 본보가 보도한 화개천 수중보 사업도 ‘관광객의 접근성과 이용성 제고를 위한 친수공간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 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사업비 19억)
•
섬진강변 갈대밭 생태습지공원 조성사업 : 2012년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고전면 신월리 섬진강변 갈대밭(3,350㎡)에 신월 생태습지공원이 조성됐다. 그러나 관리부족, 주차장 미비 등의 요인으로 습지공원 내 산책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예 없어 멀쩡한 갈대밭만 망쳐놓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업비 17억)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하동군은 2020년 3월 목도공원과 신월습지 사이에 다시 2.5㎞의 대나무 숲길을 조성했다. (사업비 2.3억)
•
섬진강 수변 테마파크 조성사업 : 섬진강 수변공원은 이미 조성된 것만 평사리공원, 송림공원, 하동포구공원, 선소공원 등 여러 곳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9년 마무리된 송림공원 조성사업(사업비 56억)을 비롯하여 2017년 하동읍 상·하저구 마을 일원을 수변공원으로 만드는 ‘섬진강 물아래 고향 포구 조성사업’(사업비 36억), 2021년 악양 ‘동정호 지방정원 조성사업’(사업비 40억) 등에 끊임없이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조성사업 : 하동군은 ‘영·호남 통합의 상징성이 큰 섬진강변에 ‘스토리가 있는 길’ 조성을 통해 동서통합과 지역간 상생발전을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2011년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조성사업’에 착수해 2015년에 완공했다. (사업비 200억)
섬진강 개발사업비 4,000억이 넘어
이외에도 섬진강 베이스캠프, 이화-만지 나루터 조성 사업(2017. 사업비 46억), 섬진강 뱃길복원 및 수상레저 기반시설 조성사업(2020. 사업비 69억), 경전 문화공유마을 조성사업(2020. 사업비 54억), 제2남도대교 조성사업(2022. 사업비 198억) 등 섬진강을 대상으로 한 개발사업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들 사업에 소요되는 예산만 어림잡아도 4000억이 넘는다.
섬진강이 그나마 지금의 수질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4대강 사업의 광풍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굿둑이 없이 강과 바다가 소통하는 섬진강을 파헤치려는 각종 개발사업을 지금이라도 중지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지금같이 아름다운 섬진강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이 아름다운 강에 도로를 내고, 강을 막고, 강변을 파헤치는 개발사업을 허용할 것인지 우리 하동군민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