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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문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

부자의 쓰레기를 가난한 이가 처리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며 소비 대국이다. 따라서 당연히 세계 최대의 쓰레기 대국이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인 1명이 하루에 약 2kg 이상의 쓰레기를 배출한다. OECD 평균에 비해 1.5배, 전 세계 평균보다는 3배 이상 많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4%를 차지하는 미국이 전 세계 고형폐기물의 12%(2억 3900만t)를 만들어내고, 세계 인구의 16%에 불과한 고소득 국가에서 버리는 쓰레기가 전 세계 폐기물의 34%(6억 8300만t)에 이른다. 빈곤국 주민 1명이 버리는 쓰레기는 하루 0.11㎏이다.
한겨레 21(2021. 7. 31.)
한겨레 21(2021. 7. 31.)
쓰레기를 양산하는 부유국들은 그동안 자국 쓰레기를 주로 중국이나 터키,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의 빈곤국에 떠넘겨 왔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재활용 폐기물의 절반 가까이를 처리해 왔던 중국이 2018년부터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고, 2021년 1월부터 폐플라스틱의 수출입을 규제하는 바젤협약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타이·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 등으로 향하던 쓰레기는 다시 원산지로 돌아가거나 다른 처리장을 찾아 세계를 떠돌고 있다.
부유국의 쓰레기 수출은 쓰레기 처리문제를 넘어 주민들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비공식 집계(2018)에 따르면 재활용품을 팔아 생계를 잇거나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음식물을 먹는 빈민이 전 세계에서 1500만 명에 달한다. 또한 전 세계 빈곤국에 산재한 초대형 쓰레기 매립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인구는 64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결과 2015년 중국 선전(69명 사망), 2017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115명 사망) 등에서 쓰레기더미 붕괴 참사가 일어났고, 이런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쓰레기 처리에서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은 2019년 기준 연간 1억 8천만t의 쓰레기가 발생했는데, 10년 전에 비해 약 40%나 증가했다. 생활쓰레기는 2019년 기준 1인당 연간 약 399.7㎏을 배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단위면적당 쓰레기 발생량은 미국의 7배로 적지 않은 양이다. 또한 국내 쓰레기 재활용률은 2019년 기준 86.6%, 생활폐기물 재활용률은 59.7%로 세계 2~3위를 차지하지만 거품을 걷 어내면 실질 재활용률은 50%가 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만성적인 쓰레기 처리시설 부족을 생각하면 절대 높은 수치가 아니다.
한겨레 21(2021. 7. 31.)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금지한 2018년 이후 세계적인 ‘쓰레기 대란’이 벌어지며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쓰레기 수출길이 막히자 상대적으로 주민감시가 느슨한 전국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불법 투기한 쓰레기 산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초 미국 CNN의 보도로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었던 경북 의성의 쓰레기 산(20만 8천 톤)이다. 부유국의 쓰레기를 빈곤국에 떠넘기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행태가 국내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하동군의 쓰레기 처리도 불평등하다!

하동의 쓰레기 문제 또한 다르지 않다. 금성, 고전 등 바닷가에 인접하거나 인구밀도가 낮은 취약지구를 중심으로 쓰레기 처리시설이 집중되고, 광역 지정폐기물처리장,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 등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피해지가 금성면 명덕마을이다.
금성면 명덕마을(주민 400여명)은 화력발전소 인근 470m에 위치해 있어 석탄재 등 오염물질로 인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반경 2km 이내에 ①하동군 생활쓰레기 소각장, ②총 8기의 석탄화력 발전설비, ③총 16기의 고압(345,000kv, 154,000kv) 송전탑, ④하동화력 저탄장, ⑤하동화력 회처리장, ⑥154,000kv 고압송전탑 11기와 변전소(공사 중), ⑦하동군 광역쓰레기 소각장(공사 중) 등이 집중돼 있다. 이에 따라 명덕마을 주민들은 소음, 분진, 악취, 발전폐수 등으로 20여 년간 각종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메디컬 투데이>(2020. 9. 2.)의 보도에 따르면 국립환경과학원과 동아대의 조사 결과 명덕마을 주민 17명 중 16명의 비소 농도가 국내 표본조사 결과치보다 높았다. 이 중에는 비소 농도가 최대 20배 가까이 높은 주민도 있었으며 혈중 수은 농도도 17명 중 9명이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정상 수치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소 주변의 대기 중 중금속 농도는 인구가 밀집한 전국 7대 광역시 평균보다 높았으며 특히 1급 발암물질인 비소는 3배 가까이 높았다. 호흡기질환 사망자도 전국 평균의 3.84배에 이른다. 명덕마을이 2019년 제24회 환경의 날에 (사)환경정의에서 뽑은 전국 최악의 ‘환경 부정의 사례’에 선정된 이유이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경제구조, 쓰레기 처리를 사회경제적 약자나 취약지구에 전가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쓰레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매립에서 소각으로, 소각에서 종량제로, 종량제에서 생산자책임 재활용제도(EPR)로 ‘쓰레기의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처리’ 방식만 생각하는 한 해결책은 없다. 왜냐하면 쓰레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