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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어느 팬데믹 귀촌자의 날씨와 생활

#날씨와 생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잠들기 전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있었다. 다름 아닌 뉴스 일기예보를 챙기는 것. 종일 힘든 밭일을 하고 저녁상을 물릴 때면 이내 티브이 앞에서 고개를 떨구셨지만, 일기예보순서가 되면 화들짝 눈을 뜨곤 하셨다. 더우나 추우나 평생을 자연의 시계로 살아온 농부에겐 하루하루 주어지는 날씨가 생활의 기준이자 나침반이었으리라.
그런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 거라 여긴 딸은 도시 생활자가 됐고, 하루하루 날씨를 살필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낮 밤은 물론이고 꿈속에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워커홀릭’으로 지내는 동안, 날씨는 바쁜 하루하루 뒤로 뜨고 지는 배경 같은 것이었다. 물론 지구온난화, 이상기후에 관한 뉴스는 갈수록 심각해졌지만,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처럼 아득했고, 몇 군데 단체에 정기기부를 하는 것으로 소임을 하고 있다고 여기며...

#어쩌다 귀촌, ‘팬데믹’ 3년차

무디고 오만한 도시생활자가 ‘날씨와 생활’을 생각하게 된 건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불러온 팬데믹 때문이었다. 십여 년 전, 어쩌다 ‘폐기저질환자’가 되어서 가끔 지방을 오가며 요양을 하곤 했는데, 3년 전 남원 지리산 자락에서 ‘코로나 19 사태’를 맞게 됐다. 듣도 보도 못한 높은 치명률에 놀라 납작 엎드려 몇 달을 지냈다. 그렇게 삼 년 차가 됐고, 어느덧 악양 지리산 자락에 작은 집까지 얻게 됐다. 언젠가 따뜻한 남도에 작은 집을 짓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지만, 바이러스가 그 계획을 앞당겨 줄은! 막연했던 이상기후, 세기말 지구의 날씨가 내 생활 속에 있음을 실감했다.

#‘날씨가 우리’가 되는 세상에서...

어쩌다 ‘팬데믹 귀촌’ 하고 나서 ‘환경’과 ‘기후 위기’를 더 생각하게 됐다. 얼마 전 보게 된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2020. 민음사)는 지구의 평화를 바라지만 안락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수많은 경고가 담겨 있다. 해수면 상승, 녹아가는 빙산, 초강력 태풍, 폭염, 가뭄으로 반복되는 이상기후들이 실제로 우리가 만들어낸 날씨일 뿐이라고. 이렇게 가다간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대멸종을 곧 만날 수밖에 없기에, 국가 간 노력뿐 아니라 개인들의 실천을 미룰 수 없는 기점이라고 말이다.
책에서 말하는 개인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활동은 네 가지 정도다. 채식 위주로 먹기, 비행기 여행 피하기, 차 없이 살기, 아이 적게 낳기 (한 가지 는 할 수 있어 다행인가;;) 특히 강력한 온실가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채식 위주의 식사를 꼽는다.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더라도, 채식 지향의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단호한 변화는 쉽지 않다. 하루하루 일상의 안락과 지구 미래의 딜레마에서 허우적대는 소시민으로선. 주어진 상황에서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된다. 지난해부터 지리산 ‘산악열차반대시위’에 가끔씩 참여하게 된 것도 그 이유다. 하루가 다르게 아름다운 풍경을 내어주는 자연에 기대어 건강을 회복하고 위로받은 감사를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기도 했고.
반달곰이 서식하는 지리산 형제봉을 비롯한 주변 능선 일대에 모노레일과 산악열차를 만들겠다는 하동군의 ‘알프스하동프로젝트’, 무분별하게 산을 파괴하고 잠시 편리한 관광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이익은 지자체와 대기업에 돌아갈 뿐이다. 야생 동물 서식지 파괴로 인한 산사태, 가뭄, 산불, 수많은 기후 위기의 변수까지 책임지진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광대하고 푸른 지구’에 다시 눈뜨는 일

지루하고도 막연한 기후 위기를 어떻게 조금 더 실감할 수 있을까. 앞선 책의 저자는 달 탐사 우주인들이 찍은 ‘광대하고 푸른 구슬’ 같은 지구의 모습이 환경문제에 눈을 뜨게 했다고 말한다. 1972년 촬영된 지루하고도 막연한 기후 위기를 어떻게 조금 더 실감할 수 있을까. 앞선 책의 저자는 달 탐사 우주인들이 찍은 ‘광대하고 푸른 구슬’같은 지구의 모습이 환경문제에 눈을 뜨게 했다고 말한다. 1972년 촬영된 이 사진은 어둡고 거친 우주에 떠 있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지구 보호에 대한 집단 욕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를 떠나서야 그 아름다움에 눈뜬 우주인들처럼, 우주로 떠날 수 없는 노릇이고. 어쩌다 이 주제로 글을 시작했을까 후회가 엄습할 정도로 어려운 답이다. 하지만 먼 나라 전쟁도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듯, 우리는 지구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다.
봄이 오고 날이 따듯해지니 어느새 여름 걱정이다. 지난해 이사하고 에어컨 없는 여름을 보내고 심히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작은 집, 지구를 생각해서 버텨보고자 했으나, 수행이나 다름없던 그 시간을 다시 보내려니 아득해진다. 물론 지구를 위해 많은 편리를 당장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날씨와 우리를 위해 더 고민하고 실천하다 보면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좀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민숙 한동안 티비 다큐멘터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글을 써왔다. 얼마 전 지리산 남쪽 자락에 귀촌했고, 날마다 경이와 위안을 주는 자연에 감사하고 있다. 그 위안을 더 오래도록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2022년 4월 / 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