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지금, 거의 너무 지치고 우리가 해 왔던 기본 보건소 기능은 실제적으로 그렇게 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코로나 대응하다 보니까 모든 직원이 여기에 너무 많이 투입이 되고 또 너무 장기화되다 보니까 사실은 놓고 싶은 그런 감정들이에요. 터트리면 다 울고 그런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각자 맡은 일을 가지고 야무치게 하고 그랬는데…. 보건소에서 하는 사업은 진짜 많거든요.”
보건소에서 취재를 하던 중 직원에게 들은 말이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상황 속, 의료인들이 우울과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했는데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보건담당 공무원들은 코로나 대응 외에도 새하동 병원이 응급실을 운영하지 못했던 2달여 동안 공백을 메꾸고자 애썼던 일, 서부경남 공공병원을 하동에 유치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일을 언급하며 “군민들이 우리의 이런 노력을 얼마나 알아주시는지 모르겠다.” 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선의 공무원과 의료인들의 수고가 공공의료에 대한 군민들의 만족과 신뢰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병원과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1차 의료기관으로서 보건소의 역할은 매우 광범위하고 중요하다. 실제로 보건소는 진료와 처방 이외에도 예방접종, 감염병 관리, 건강증진사업, 모성아동 건강지원, 만성질환 관리, 여성과 어린이 건강증진사업, 구강보건사업, 암예방 관리, 치매예방 관리, 식품위생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군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이들 사업을 위해 하동군은 2021년에 89억여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과연 이 예산은 적정한 규모일까?
하동군을 비롯한 경남 10개 군의 2021년 보건소 예산을 살펴보자.
인구 감소, 노령화 등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10개 군의 보건소 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1.6%에 불과하다. 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해 군 단위 보건소들이 실효성 있는 사업을 집행하기에는 너무도 적은 예산이다. 특히 하동군은 총예산 규모로는 1위(약 8888억)를 달리고 있는 보건소 예산 비율은 1.00%(89억)로 10개 군 중에서 꼴찌이다. 이는 인구수가 비슷한 합천이 1.8%(114억), 남해가 1.94%(103억)인 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낮다. 또한 대부분의 보건소 사업이 보건복지부의 국비지원을 전제로 한 사업임을 고려하면 하동군 보건 예산은 지원된 국비를 수동적으로 집행하는 것에만 급급할 뿐, 하동의 인구 특성에 맞게 적극적이고 독자적으로 편성한 보건의료사업 예산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예산서 상으로는 하동군이 공공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응급실이 없으면
항상 목숨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
하동군, 새하동 병원에 3억 1900만원 지원.
그러나 …
하동의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보건소 공무원도 민간병원 의사도 입을 모아 ‘응급실’이라고 말했다. C면에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A씨는 “30분 전에도 한 분이 벌에 쏘이셔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셨거든요. 그 분 같은 경우 저희가 빨리 주사를 맞혀서 응급실로 보내요. 주사 맞고 나서 그 다음에 잘 안 되면 기관 삽관이나 응급시술을 해야 하는데 그런 건 응급실에서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하동에 응급실이 없어 진주로 간다? 그러면 1시간이 넘게 걸려버리잖아요. 그러면 응급은 끝나는 거거든요. 응급실이 없으면 항상 목숨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인 거예요.” 라며 응급실의 존재와 안정적인 운영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하동에는 단 한 곳, 새하동병원에 응급실이 있다. 그러나 올 초에도 응급실 운영이 중단되는 등 매우 불안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읍내의 한 의사는 “결국 돈이 문제인데 행정 쪽에서 지원한다 해도 언제까지 해 줄 수 있겠나? 그리고 그렇게 돈을 퍼 줄 바에야 군이 직접 운영하는 게 낫다. 어려운 문제다. 지금 상황에서는 응급수송체계를 잘 마련해 놓는 것, 그 정도가 대안일 수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동군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보건소 예산서에는 응급의료기관 지원(응급실 인건비) 8400만 원, 취약지역 응급의료기관 운영지원 1억 3500만 원, 취약지역 응급의료기관 지원(적자보전) 1억 원, 총 3억 1900만 원이 새하동병원에 지원하는 금액으로 책정되어 있다. 이 중 인건비 84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미집행 상태인데 새하동병원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 집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3억 2천만 원에 가까운 예산을 책정해 놓고도 하동군은 휴·폐업을 거듭하고 있는 새하동병원 응급실이 정상 운영되기를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뿐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적량면 보건지소
코로나 속 공공의료 공백 장기화,
군민 건강권 위해 군 행정이 적극 나서야
총예산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보건예산, 민간병원에 떠맡겨진 24시간 응급체계의 불안정성, 이것이 하동 공공의료의 현 주소다. 거기에 더하여, 지역 공공의료 지킴이인 보건지소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만 진료를 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공공의료의 공백이 커지고 있다. 공중보건의사들이 하동군 뿐만 아니라 타시도로 차출되어 코로나 업무를 보고 있기 때문에 두세 명의 공중보건의사가 하동 13개 지역을 순회한다. 담당 공무원은 ‘그래도 일주일에 두세 번 꼭 진료가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본 기자가 C면에 들렀을 때의 상황은 달랐다. 당직자에게 ‘공중보건의사를 만날 수 있냐’라고 물으니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안 나오신다’고 답했다. 의사가 2주 동안 진료를 하지 않는 곳의 의료공백은 군민들의 건강권에 위협이 된다. 이런 상황이 2년 째 지속되고 있기에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일선의 공무원과 의료인들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해도 군민들의 요구가 충족되기 어렵다. 언제까지 코로나를 탓하며 뒷짐지고 있을 수 없다. 의료불안을 해소하고 군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하동군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구체적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