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home
이슈/사회
home
👱🏽‍♂️

의료의 사각지대, 외국인 이주민

하동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이주민의 의료실태를 취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동군청 행정과의 인구증대시책 담당자도, 주민행복과의 복지기획 담당자도 자신의 업무가 아니며 담당부서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는 답변이었다. 수차례의 연락 끝에 기획예산과의 외국인 등록 담당자인 K주무관과 긴 시간 통화를 했으나 결론은 하동군에는 이주민과 관련된 부서도, 담당자도,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하동군에는 이들을 위한 아무런 의료정책도 없다. 건강보험공단 남해하동지사에도 연락을 취해 봤으나 답변은 마찬가지였다. 이주민의 의료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이주민의 의료문제, 이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이미 아시아의 대표적인 이주목적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2021년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 대비 체류외국인 비율은 2016년 3.96%에서 2019년 4.87%로 매년 증가하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에는 3.93%로 감소했다. 2020년 말 기준 2백만(2,036,075) 명에 달하는 외국인 체류자에 결혼이민자까지 합치면 외국인 이주민(이하 이주민)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의료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주민들은 진료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본인부담금)과 언어소통의 어려움으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시민사회단체 ‘이주민과 함께’에 의뢰해 실시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2020)에 따르면,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주관적 건강인지율은 16.5%에 그쳤다. 농촌에서 일하는 농업 이주노동자 10명 중 8명 이상은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를 단순히 이주민들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이주민들이 의료사각지대에 방치될 경우 이주민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코로나19 시대에 전염병 확산의 위험성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통계청,법무부 - 2018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
보험료는 많이 내고 병원에는 가지 못 한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2019년 7월부터 6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과 재외국민들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의무가입은 오히려 이들에겐 족쇄가 됐다. 내국인 가입자가 부담하는 평균 보험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한 결과 이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월 최소보험료는 2019년 11만 3050원, 2020년 12만 3080원으로 책정됐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입이 한국인 노동자의 67% 정도에 머물고 있고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이주민이 직장가입자인 경우에는 그나마 사업주가 절반을 부담하지만, 지역가입자인 경우에는 평균 보험료보다 2배 가까이 높은 금액을 부담하고 있다. 게다가 지역보험은 재산과 수입을 감안하여 설정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험료 감면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높은 건강보험료를 내고도 병원 진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지금의 이주민 건강보험체계가 가져온 결과는 놀랍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건보 재정은 매년 큰 규모의 흑자를 경신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2020년 공개한 <외국인 등 건강보험 재정수지 현황>을 보면 2015~2018년 4년 동안 외국인 가입자의 건보재정은 9417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외국인이 건강보험료를 내고도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1조 원에 가까운 돈이 남은 것이다!
하동군의 이주민들은 더욱 힘들다.
하동군과 같은 농어촌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외국인을 고용하는 농민들은 건강보험 가입에 필요한 사업자 등록증 없이 ‘영농규모 증명서 사본’만 있어도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 농업노동자는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5인 미만 소규모 개인사업자가 많은 농어촌에선 사업주가 아예 보험 가입 없이 일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하동에서 8년째 농업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S씨에 따르면 “주변에 보면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가 건강보험이 없다. 보험이 없으니까 한 번 병원에 가면 5만~10만 원씩은 기본으로 깨져서 병원 가기가 겁난다.”는 것이다.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인이 꺼리는 3D(Dirty: 지저분하고, Difficult: 어렵고, Dangerous: 위험한) 업종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높은 보험료(혹은 진료비)를 내고도 병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문제를 겪고 있다면 하동지역의 이주민, 특히 농업노동자들은 거기에 더하여 아예 건강보험조차 없이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의 e-하동지표에 따르면 하동군에는 2019년 기준 525명의 외국인 체류자와 354가구 1,269명(합계 1,794명)의 이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하동군 전체인구의 4.2%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미 하동군 곳곳에 이렇게 많은 이주민들이 자리 잡고 있는 데 비해 하동군청과 건강보험공단은 아무런 정책적 대안이나 문제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밭에서 일하는 외국인 이주민
통계청과 법무부의 2019년 자료에 의하면 이주민의 67.8%가 의사소통과 치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한 만큼 해결책은 단순하다. 첫째, 지자체 혹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이주민 환자와 의사 사이의 통역을 담당해 줄 수 있는 ‘실시간 통역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농어촌의 경우 사업자등록증이 없어도 이주노동자 직장가입을 허용하거나, 보험료 경감 정책을 적용해 이주노동자 건강보험료를 현실적으로 책정”(이한숙 부산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현장에서 병을 얻은 외국인 이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제공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며 인권차원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이주민 환자가 병을 키워 결국 건강보험 재정 수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시대에 전염병 확산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하동군과 건강보험 관리공단은 이주민의 건강문제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1년 9월 /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