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수용성. 말 그대로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이나 사업을 얼마나 흔쾌히 받아들이는가를 말한다. 사회적 수용성이 높으면 그만큼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동의가 이루어졌다는 뜻이므로 사업진행이 원활하고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 반대로 수용성이 낮으면 갈등이 폭발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증가한다. 일부 전문가는 “수용성이 낮으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고 주장하며 경제성이나 공익성보다 수용성이 중요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동군의 관광정책에 대한 주민의 수용성은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을까?
#1. 국도 19호선 4차선 확장공사 - 수혜자와 피해자
국도 19호선 확장공사(하동읍~화개면 구간)는 계획을 세운지 21년 만인 올해 6월에 완공되어, ‘하동포구 80리길’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섬진강을 따라 유려하게 남해를 향해 흘러가던 벚꽃길은 마디마디 끊어지고 ‘화개십리벚꽃길’만 온전히 남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의 저서에서 인용한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라는 팻말은 슬며시 사라지고 차량들은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섬진강변을 질주하여 화개장터로 달려가고 있다.
개발 사업 시행 전인 19호선 국도의 벚꽃길이 아름답다. (사진: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이 사업은 처음부터 주민수용성이 낮은 사업이었다. 4차선 확장을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결성되고 민-관, 민-민 간에 갈등이 폭발하는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사업은 지연되었다. 사업지연에 따라 사회적 비용은 급격히 증가(공사비 861억→1,114억)했다. 또한 주민수용성이 낮은 사업의 시행은 엉뚱한 수혜자와 피해자를 낳기도 했다.
화개장터의 건물주와 상인들은 최대 수혜자로 한때 평당 매출액이 전국 2위를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낳으며 20평 점포의 거래가가 10억 원(평당 5,000만원)을 호가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화개장터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K씨(46, 화개면)의 말이다. “가게를 임대해 장사하는 상인들이 건물주와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시때때로 건물주의 집안일을 돕기도 하고, 심지어 한 해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을 시켜주는 일까지 있었다. 가게 추첨과 재계약을 둘러싸고 중상모략과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예전에는 폭력사태까지 일어난 적도 있다. 화개장터가 유명 관광지가 되면서 아주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9호선 확장의 대표적인 피해자는 하동읍 만지길의 식당주인과 배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다. 만지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식당주인과 농민들은 새로운 4차선 국도가 개통된 뒤 손님이 뚝 끊겨 울상을 짓고 있다. 만지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J씨(60대, 하동읍)의 말이다. “4차선이 생기면서 전부 씽하고 지나가 버려요. 이쪽으로 차들이 들어오질 않아요. 매출이 2~30%로 떨어져서 먹고 살기도 힘듭니다.” 만지에서 배농사를 짓는 이광주씨(60, 하동읍)의 말이다. “만지길로 들어오지 않는 4차선 공사를 반대하다가 새 도로가에 가게를 지어주는 조건으로 타협을 봤지만 다들 예전만 못한 것 같아요. 농가에 따라 다르긴 해도 아무래도 피해가 많죠.”
벚꽃길을 살려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던 4차선 확장공사가 주민들의 이동 편의성을 높인 점도 있지만, 관광정책 차원에서는 소수의 수혜자와 다수의 피해자만 낳은 꼴이다. 주민수용성이 결여된 결과 ‘하동포구 80리 벚꽃길’이라는 아름다운 관광자원은 무참히 파괴되고, 예산낭비와 함께 주민간의 빈부격차와 갈등을 심화시킨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2. 금오산 해맞이 공원 - 쫒겨나는 지역주민
경남의 대표적 해맞이 명소로 꼽히는 금오산 정상에는 2017년부터 아시아 최장을 자랑하는 집라인이 운영되고 있다. 하동을 대표할 만한 관광명소로 널리 선전되며 하동군 관광개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이곳은 지역주민들에게는 오랫동안 새해 소망을 비는 장소였다. 연말연시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도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즐겨 찾아 아름다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풍광을 즐기던 곳이다.
문제는 하동군청에서 금오산 정상에 집라인과 함께 케이블카를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업은 지역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던 산 정상의 해맞이공원을철거하고, 위탁업체가 운영하는 케이블카를 유료로 이용해야만 정상의 조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를 한 것이다. 지역민의 공유자산인 금오산을 군청이 개발하고 그 사업권을 민간업체에 위탁하여 운영하면서 지역주민이 오랫동안 누려오던 산에 대한 권리를 제한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주민수용성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주도의 일방적인 관광개발정책이 만들어낸 문제인 것이다.
군의회에서 이 문제로 논란이 일자 군청이 내놓은 대책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기존의 해맞이공원은 계획대로 폐쇄하고 군 예산을 투입하여 주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해맞이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하동군민을 위해 시작했다는 관광개발사업이 오히려 하동군민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논란이 일자 새로운 예산으로 다른 곳에 개발사업을 벌여 더 넓은 자연을 파괴하고 더 많은 예산을 낭비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김영길, 65, 고전면)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근 진교면에 거주하는 이춘선씨(45)의 말이다.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요? 주민들 의견은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몇 년째 산을 뒤집어 놓더니, 아예 이젠 돈을 내고 금오산엘 올라가라니, 그게 누구네 산인데? 이게 말이 되나요? 그리고 산 위에다 따로 공원을 또 만든다던데 그 돈은 또 어디서 나오나요? 좀 이상해요.” 주민수용성을 무시한 채 대규모 관광개발사업을 강행한 하동군청의 졸속 행정이 빚어낸 행정력과 예산 낭비의 또 다른 사례이다.
건설교통부가 주도했던 19호선 확장사업이든 하동군청이 주도했던 금오산 케이블카 사업이든 대규모 관광개발사업에서 주민수용성을 무시했던 결과는비슷하다. 지역주민들의 피해와 이에 따른 반발, 예산낭비와 사회적 비용의 증가가 바로 그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하동군청이 관광산업을 ‘하동 100년 먹거리’로 규정하고 대규모 관광개발사업을 주도하면서 비슷한 사례들이 점점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 여간 하동지역 관광개발의 핫이슈이자 논란거리로 떠오른 산악열차사업, 일명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도 지금이라도 경제성이나 환경성 등의 논란을 넘어서 주민의 수용성부터 차분히 따져보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하동군이 ‘사회적 수용성’의 문제를 그저 사업진행을 위해 주민동의서의 인원수를 채우거나, 관변단체를 동원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한 관광개발사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동군은 지금이라도‘정책의 홍보보다 주민의 동의와 공감을 먼저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수용성 제고의 원칙을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