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서관 건설이 백지화됐음에도 연계된 ‘인문학길 조성사업’은 멈추지 않아
하동읍 광평리 광원마을에서 진행 중인 ‘인문학길 조성사업’이 주민들의 수요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 채 겉돌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 2019년 국토교통부의 ‘지역수요맞춤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5년(2020~2024년) 동안 총 30억(국비 20억, 군비 10억)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마을벽화와 섬진강 나루공원 조성, 마을안길 포장, 쉼터 정비 등을 통해 ‘섬진강과 도시경관의 조화를 풍경에 담아 주민들과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힐링공간을 제공’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은 현재 50% 정도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인문학길 조성사업 개념도
그러나 거창한 사업목표와 막대한 예산투입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는 사업효과가 나타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주민들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해 주민들의 이해와 호응이 부족한 데다, 연계 사업인 ‘상상도서관 조성사업’마저 백지화되었기 때문이다.
“저(섬진나루공원) 가서 놀라고 하는데, 누가 거길 가는가? 마을에 사람이 없는데. 한 2년됐는데 나도 아직 한 번도 안 가봤어. 동청에나 가지.” (마을 주민 A씨)
“우린 몰라. 이장이나 알지. 여기저기 돈이 꽤 들었다던데 쓸 데가 없어. 마을 사람들이 거가서 앉았을 시간이 있는가, 어디.” (마을 주민 B씨)
섬진나루 쉼터. 마을주민들조차 이용하지 않아 쓰레기와 거미줄이 가득하다.
이 사업이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 하는 이유는 계획단계부터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관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사업이 시작된 2020년이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특수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5년 간 30억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임에도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조차 열린 적이 없다.
이 사업이 표류하고 있는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이 사업 자체가 이미 전면백지화가 결정된 ‘상상도서관 조성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상상도서관 조성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5개의 세부사업의 내용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표] 참고)
[표] 인문학길 조성사업의 세부 내역
세부사업명과 사업내용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업은 상상도서관을 위한 배후사업의 성격을 띄고 있다. 따라서 본사업에 해당하는 상상도서관 조성이 백지화된 상황에서 이 사업 또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상상도서관 조성과는 별개의 공모사업” 이었다는 이유로 ‘인문학길 조성사업’은 근본적인 재검토 없이 강행되고 있다. ‘상상 만화카페’와 ‘상상의 언덕’ 등 일부 세부사업이 수정되긴 했으나 사업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산업단지인 갈사산단 사업이 좌초했음에도 배후단지인 대송산단 사업을 강행하다가 결국 천문학적 규모의 빚만 남긴 채 하동군 재정을 파탄시킨 갈사·대송산단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이미 확보된 예산과 수립된 계획이 있다는 이유로 근본적인 상황이 변화했음에도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사업의 성격이 ‘지역수요맞춤 지원사업’이었음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지역주민의 수요와 의견을 제대로 조사하고 반영하여 주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이 전환되어야 한다. 마을 이장조차 “나도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군에 물어보아야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마을사업에 30억이나 되는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명백한 예산낭비이다.
현재 하동군에는 ‘인문학길 조성 사업’ 외에도 같은 국토교통부 공모로 ‘이화만사성 사업(34억), 진교 민다리공원 사업(30억), 경전 문화공유마을 사업(34.9억)’ 등의 마을사업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