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home
이슈/사회
home
🧑🏻‍💼

칼럼/ 오늘날 우리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할까?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금남면 주민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에서 정약전 선생(1758~1816)은 흑산도 토박이 창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리학과 서학은 결코 적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벗이지.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당시 학자나 양반들은 대체로 천자문은 기본이요, 사서삼경으로 대변되는 유교 경전에서 시작해서 주자의 성리학까지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반면,“임금도 모르고 조상도 섬기지 않으며 제사까지 지내지 않는” 서학(천주교나 기독교)은 사악한 학문(사학)이라 해서 배척하였다. 그러나 서양의 자유와 평등사상을 일찍 받아들인정약용(1762~1836)과 정약종(1760~1801)의 형 정약전은 위 영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학이든 성리학이든 (백성을 위해) 좋은 건 다 갖다 써야 한다.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이더냐 백성이더냐?”
이러한 태도나 시각은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만백성을 위한 공부, 행복한 삶을 위한 공부,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인문학’이 절실히 필요한 까닭이다. 위 영화에서 정약전은 출세를 위한 학문보다 서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학문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에 (흑산도유배지에서 마을 청년 창대와의 우정을 기초로) 155종의 물고기, 해초 등 바다 생물을 기록한 <자산어보>를 14년만에 펴냈다. 한편, 육지에 사는 장 진사의 서자로 태어난 흑산도 마을청년 창대는 늘 미천한 신분을 넘어 출세를 꿈꾸면서 어장 일은 물론 공부에도 매진했다. 정약전의 가르침을 받아 마침내 소과에 급제, 관직까지 얻는다. 그러나 출세의 기쁨도 잠시, 백성을 약탈하는 부패한 공직 사회를 직접 목격한 뒤, 정약용의 <목민심서>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훨씬 값어치 있음을 깨닫고 흑산(자산)으로 돌아간다. 결국, 양반 출신인 정약전이나 서자 출신인 장창대나 세상사는 이치가 결코 높은 자리나 재물, 명예에 있기보다 자연이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에 있음을 깨달은 것! 이 깨달음의 과정이 곧 인문학 공부다. 요컨대, 사람 사는 이치에 관한 공부가 곧 인문학(humanities)이라!
물론, 우리는 인문학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집을 짓거나 옷을 만들거나 식량을 생산하는 것과 연관된 기술도 잘 배워야 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 사회나 역사, 자연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한다.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유익하게 사용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전기와 같은 에너지 문제도 잘 해결해야 한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동의보감’ 같은 의술도 필수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지식이나 기술을 많이 알아도, 그 지식과 기술을 사람이나 자연에게 해로운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지혜다. 따라서 우리가 제대로 된 인격체가 되려면 지식, 기술, 지혜를 두루 섭렵해야 한다. 바로 이 지혜에 관한 공부가 인문학의 핵심이다.
만일 누가 지식이나 기술은 뛰어나되, 지혜가 없다면, 자칫 세상에 해악을 끼치기 쉽다. 어쩌면 차라리 지식이나 기술 자체가 하찮은 사람이 그보다 나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 실력을 과신하지 않아 큰 권력을 탐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 물론, 오늘날 우리는 지식이나 기술이 별로 높지 않으면서도 ‘아는 척’하는 권력자를 많이 본다.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나라나 조직을 경영하는 지도자일수록 지식, 기술, 지혜를 고루 갖춰야 한다. ‘철없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란 말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엘리트는 그래서 위험하다.나는 오늘도 내일도, 인문학을 통해 모든 시민이 행복해지는 꿈을 꾼다.

2024년 3월 /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