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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지리산 이야기 (1)- 피아골

양민호

악양, 지리산 산꾼
오늘 제가 들려드릴 지리산 이야기는 ‘피아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피아골’하면무엇이 생각나나요? 
우선 피아골의 지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피아골 주변은 예로부터 습지가 많았던 곳입니다. 습지에서 잘 되는 작물이 ‘피’라는 작물이거든요. 옛말에 ‘피죽도 못 먹은 사람같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들은 가축의 먹이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하는 피의 알갱이로 끓여 만든 피죽, 그것도 못 먹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지요. 피아골은 이 골짜기의 마지막 마을이자 산으로 접어드는 입구에 있는 마을로 한자 이름이 ‘직전마을’. 즉 피 직(稷), 밭 전(田)자를 쓰는 마을로,이 골짜기에는 피를 재배하는 사람이 많아서‘ 피밭골’로 불리다가 ‘피아골’이 되었는데요.
다른 뜻으로는 지리산 그 어느 곳인들 사람이 죽지 않은 곳이 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피아골은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빨치산과 토벌대,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죄 없이 죽어간 양민들까지, 그 피가 계곡을 이루었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가 나왔던 곳이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지금 피아골 대피소 자리에 건물을 짓기 위해 굴삭기로 땅을 파면 흙보다 인골이 더 많이 나왔다고 하고, 그 때문에 어디서 들었는지 나환자들이 인골에 고인 물이 나병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 장소에 와서 밤이되면 땅을 파고 인골에 고인 물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또 피아골은 지리산 골짜기 중에서 단풍으로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한데요. 이유는 산으로접어들어 30분만 올라가면 단풍나무가 밀집된곳이 있는데,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하늘을가득 메우고,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에 단풍이 비쳐 ‘물빛’도 붉고, 그것을 보러 찾아간 ‘사람들의 옷차림’도 알록달록 붉다 해서 ‘삼홍소’라 이름이 붙었지요. 
피아골은 이런 역사적인 아픔과 아름다운 단풍뿐 아니라 또 다른 기막힌 전설을 가지고 있어요. 때는 바야흐로 약 300여년 전, 이 피아골 깊은 산속에는 마을이 하나 있었답니다. 이마을은 다른 마을과 달리 남자는 안보이고 모두 여자들만 살았다고 하는데요. 과연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전쟁통에 모두 죽어버린 걸까요?
이 마을은 40대 여인이 마을의 지배자로 있었고, 사람들은 그 여인을 ‘성신어머니’라고 불렀는데요. 이 여인은 언제부턴가 아랫마을을 돌아다니다 집이 없어 헤매는 어린 여자아이를보면 먹을 것을 준다며 달래어 이 산속으로 하나둘 데리고 왔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모인 여자아이들이 14~15세가 지나면서 달거리를 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성대하게 잔치를 벌였고, 그런 잔치가 끝나고 나면 이상하게 달거리를 시작한 그 아이는 다음날부터 마을에서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여자의 정체는 바로 씨받이 대모였던 것이고 달거리를시작한 아이를 대감 집에 씨받이로 보내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은 ‘종녀(씨받이)촌’ 이라고 불렀다는군요. 이렇게 아들을 못 낳는 대감집에 아이를 씨받이로 보내고, 아이가 그 집에 가서 아들을 낳으면 푸짐한 먹거리와 패물과 함께 엄마만 돌려보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딸을 낳으면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그 딸과 함께 다시 이 피아골 깊은 산속으로 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딸아이가 크면 다시 씨받이로 보냈으니, 아이의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을 낳고 싶겠어요? 딸을 낳고 싶겠어요? 누구를 낳든 간에 슬픈 건 매한가지였겠지요. 아들은 낳자마자 떨어져야 하고, 딸은 달거리가 시작되면 자신처럼 슬픈 씨받이 인생을 대물림해야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마을에는 여자들만 모여 살 수밖에 없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답니다. 이 성신어머니는 두세 번 씨받이를 보내도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을 데리고 오면 그 다음에는 ‘뒷방아이’라는 식으로 에미를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뒷방아이’란 나이가 들어 물러난 대감이나 부잣집 노인이 품고 자는 어린 여자를 말하는데요. 이렇게 어릴 때 데려다 키운 여아들을 모두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종녀촌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한 사내아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종녀촌에 잔치가 벌어진날이었어요. 잔치가 벌어졌으니, 당연히 다음날 한 아이는 씨받이로 마을을 떠나겠지요? 그차례가 이번엔 월순이였는데, 내일이면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월순이는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먹질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지요. 그때 몰래 누군가가 뒤로 와서 손을 잡아당기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돌아보니 다름 아닌 종간이였습니다. 종간이는 월순이보다 서너 살 많은 사내아이였지요.여자만 산다는 마을에 웬 사내가 있냐고요? 알고 보니, 성신어머니는 언젠가부터 다음날내려가는 씨받이 아이에게 “대감집에 가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서너 명의 시동(어린 남자아이)을 데리고 살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있었는데요. 그 시동 중에 한 명인 종간이는 예전부터 월순이를 마음에 두었던 것이고, 그 월순이가 다음날 종녀로 팔려간다는 것을 알고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마침 월순이의 엄마가 그를 찾아와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네가 월순이를 그렇게좋아하면 오늘 밤 축제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월순이를 데리고 도망쳐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종간이는 월순이를 데리고 도망쳤고,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한 후에 상감에게 그일을 고발하면서 성신어머니는 모든 게 들통나고 결국 종녀촌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여기까지가 피아골에 얽힌 첫 번째 지리산 이야기였습니다.

2024년 3월 /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