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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을 하며 행복을 만드는 소작단(小作團)

김민주

하동읍 거주
요가를 합니다. 아이들이 맘껏 웃고 힘껏 자랄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산과 강이 품어주는 이곳에 와서 기쁩니다.
평일보다 한산한 토요일 저녁의 하동. 역 근처 카페의 노란 불빛만이 환히 빛나고 있다.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연필로 무언가를 적고 나긋나긋 무언가를 읽는다. 카페 문 앞에 붙여진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작단원 모집’이라는 주홍색 제목 아래에 ‘작은 일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좋은 일을 알아 가보고 싶은 사람,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은 사람’이면 찾아오라고 적혀있다.
작년부터 하동에서 살기 시작한 나(먼지)와 이르, 두 사람이 꾸린 이 모임은 11월 25일 설명회를 가졌다.
‘작은 일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좋은 일을 알아 가보고 싶은 사람,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은 사람’을 찾는 소작단원 모집광고
작은 일을 하며 행복을 만드는 소작단(小作團). 그 시작을 이야기하려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겠다. 왜 사람들은 하루를 온전히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대부분 하루의 1/3은 일을 하는데 왜 그 시간을 괴롭게 내버려 두고 있는 걸까? 이르와 나는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리고 따로 또 같이 삶에서 답을 찾아 왔다. 자립 기술 배우기, 각종 아르바이트, 직장 생활, 궁금한 사람 찾아가기, 철학 공부, 여행, 책 읽기, 대화와 토론, 일기 쓰기... 질문의 끈을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든가 ‘회사에 들어가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든가 하는 말들이 사회적 통념일 뿐 굳이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오히려 사회적 통념을 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삶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이라는 수단을 통해 열심히 또 즐겁게 일구어내야 한다는 점도 배웠다. 그것이 세상과 조화롭게 연결되는 길이기도 했다.
자신을 믿고 이르와 나는 하동에 왔다. 아무 연고도 없는 하동에 온 것은 마냥 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규모에 맞게,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자마자 공방을 꾸려 뚝딱뚝딱 작업을 하고, 요가며 인문학이며 각종 수업을 열고, 지리산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일을 벌이는 우리를 주변에서는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일을 하다 보니 친구들도 사귀게 됐다. 하동의 친구들은 고무적이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사지선다형 답안지 중 하나로 어느 회사에 들어갈까를 고민해 왔었다면, 이곳 친구들은 자신만의 기술로 주관식 답안을 써 내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디자인, 베이커리, 도예, 바리스타, 양봉... 되든 안 되든 자신만의 기술로 옹골차게 삶을 꾸려가고 있는 그들이 정말 멋있었다.
취직할 회사가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 불안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경쟁도, 압박도, 지출도 비교적 적은 환경이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기술을 실험해 보는 신나는 장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무언가 허전해 보였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공허함은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인간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확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규모의 확장이라기보다는 방향의 확장이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방향의 확장이라 함은 ‘좋아하는 것에서 좋은 것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좋아하는 것에는 나만 있지만, 좋은 것에는 우리가 있다. 마음이 나에서 우리로 넓어진다면 더욱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는 일로 좋은 일 만들기. 이르와 내가 즐겁고 자신 있게 해나가고픈 일이었다. 그렇게 동료를 구하는 심정으로 소작단이라는 이름의 배를 띄웠다.
소작단 설명회 날, 하동에서뿐만 아니라 남원, 구례, 전주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중심을 잡고 싶어서 오셨다는 분, 작아서 좋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왔다는 분, 정신없이 붕 뜬 일상을 잘 정리하고 싶다는 분, 하동에서 만들어진 모임 자체가 흥미로웠다는 분도 계셨다.
설명회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목록으로 적어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전부 적어보세요.”라고 하자, ‘돈 버는 것만 적나요?’ ‘집안일은요?’ ‘어디까지 일이라고 해야 하나요?’라는 예상 질문이 바로 튀어나왔다. 사소해 보이지만 변화의 씨앗이 될 중요한 질문이다. 무턱대고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지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평소에 하지 않던 고민을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다 함께 상상을 해봤다. “기본소득으로도 충분해서 돈 벌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세상이 덜 흉흉해져서 애탈 일이 적어진다면, 아침에 눈을 떠서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사람들은 다시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술렁였다. 어떤 분은 현재 하고 있는 일 중에 하나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며 멋쩍어하셨고, 다른 분은 모든 일을 다 하고 싶다며 다른 의미로 어려워하셨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발견하길 바랐다. 그것은 바깥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이미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조금만 집중을 해보면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그 일들을 꿰는 공통점을 찾는 단계로 넘어갔다. 나눔, 재미, 경험, 성장, 자연, 아름다움, 예술, 배움, 도전, 만들기, 관계... 꽤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써낸 단어로부터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거꾸로 창조해 보도록 했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30만 원 만들기’를 제안했다. ‘30만 원 만들기’는 비전화(非電化:전기와 화학물질을 최대한 쓰지 않는다는 뜻) 제작자 과정을 밟은 이르가 일본의 후지무라 야스유키 선생에게 배운 ‘3만 엔 비즈니스’를 지역에 맞게 재창조한 경제 수익 모형이다. 이르는 ‘3만 엔 비즈니스’의 여덟 가지 약속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그 모델을 실행하며 느낀 솔직한 소회를 나눴다. 이르는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 두근대는 마음을 잃지 않게끔 하는 선에서 유연하게 약속을 지켜나가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예상보다 진지했고 예상만큼 따스했던 모임에 참여자분들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두 소작단의 행보를 궁금해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대답을 하려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무엇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이며, 그것을 어떻게 생생하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오랜 질문을 잃지 않는다면 소작단은 어떤 이름, 어떤 모습으로도 살아있지 않을까. 이미 배는 출항해 버렸으니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수밖에. 내가 건강해야 주변도 건강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처럼,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주변까지 좋은 기운을 퍼뜨릴 수 있었으면 한다. 작고 좋은 일이 모두의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후속모임은 설명회를 들은 분들과 함께 소박하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2024년 1월 / 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