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면 물이 하수구로 빠져나가지 않고 욕실 바닥에 고인다. 샤워가 끝나면 물긁개로 바닥을 긁어 고여 있는 물을 하수구로 보내야 하는 우리 집 욕실. ‘대충건설’이 고쳤기 때문이다.
“대충해~~.” 할 때의 그 대충이 맞다. 남편은 클 대(大)자에 충성 충(忠)자를 쓴 거라 농담을 얹지만 욕실 바닥에 고인 물을 보면 대충하는 건설이 확실하다. 대충건설은 우리 부모님과 남편과 나, 네 명이 한 팀인 가상의 건설회사다. 꼼꼼하게 정석대로 하기보단 대충 상황에 맞게 해서, ‘대충건설’이다.
공구를 사용하다보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생활의 기술을 익혀가는 중!
남편과 내가 함께 살았던 첫 집은 경주의 오래된 한옥. 보일러도 없는 한옥에서 난로와 침낭에 의지하며 살다 민박을 하려고 대충건설이 직접 고쳤다. 두 사람의 첫 집이라는 생각에 집을 수리할 때면 자재상보다 고물상에 더 자주 들락거리셨던 아빠와 달리 나는 새 자재를 신나게 ‘쇼핑’하며 집을 수리했다. 살면서 손봐야 할 곳이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이 완성되었다. 우리의 취향이 잘 드러난 것 같았고 민박을 찾아온 손님들도 좋아해 줘 ‘오~, 꽤나 멋진 집에 살고 있나?’ 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우리의 두 번째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점점 번화해지는 경주를 떠나 평화로운 이곳 하동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우리의 첫 집은 주인이 바뀌며 사라졌다. 집을 팔 땐 ‘집이 예쁘니... 새 주인이 고쳐 쓰려나?’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집은 우리 눈에만 예뻤다. 손 닿지 않은 곳이 없어 소중한 우리의 집은 누군가에겐 취향에도, 목적에도 맞지 않았다. 집을 철거하고 새로 지을 거라는 말에 이사 준비가 더 바빠졌다. 집을 직접 철거해 이사 갈 집에서 쓸 수 있는 것을 모두 가져왔기 때문이다. 장판, 문과 창문, 변기, 세면대와 샤워기, 목재, 조명, 전선, 스위치, 바닥에 깔린 보일러까지. 이삿짐을 싸는 것보다 자재를 해체하는 일이 더 힘들고 오래 걸렸지만, 버려질 것들이었고 우리는 새롭게 사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경주 집에서 이고 지고 온 것을 하동 집에 다시 깔고 달고 설치했다. 새것을 사서 쓰는 것보다 손이 더 많이 갔지만 돈을 아끼고 철거 쓰레기를 줄였다는 생각에 작은 기쁨이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경주의 집은 터만 남고 건물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열심히 고치고 가꾸며 살았던 집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보는데 아쉬움보다는 묘한 통쾌함이 있었다. ‘아니! 취향이란 거, 아무것도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가벼워졌다. 좋은 자재, 취향과 멋이 잘 녹아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 생각했는데 취향이란 건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주인이 바뀌면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동 집 역시 오래된 한옥을 대충건설이 직접 수리했다. 두 번째 집을 수리할 때는 조금 더 단순한 마음이 되었다. 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거나 특별하고 멋진 나만의 집이 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의 색깔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지만) 그보다는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두 사람이 ‘어떻게 일상을 채워나갈 것인가?’하는 것을 더 많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눴다. 비싸고 멋진 가구를 놓을 자리에 정갈함과 단정함을 두는 것이 우리의 삶에 더 이로울 것 같았다.
새로 지은 집보다 오래된 집을 수리해 사는 것이 우리에겐 더 재미있다. 집에 있어 ‘완공’이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시골의) 집은 살아가다 보면 수리할 곳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나사가 느슨해지고 페인트가 벗겨지고 습기가 찬다. 그러면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가끔 나사를 조인다. 집의 변화를 유심히 살피며 부지런히 쓸고 닦아 오래된 집에 손길을 더한다.
집을 수리하며 사는 것과 깨진 그릇을 옻으로 이어 붙이는 것, 오래 입은 남방을 일곱 번 수선하는 것이 묘하게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