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이라 불리는 청학동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세간에 ‘청학동’으로 불리는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도인촌에 가면 아직 전통옷을 입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청학동 곳곳엔 서당 간판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고 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넘쳐났던 이곳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간판은 있지만 거의 문을 닫은 상태다.
도인촌 끝자락까지 오르면 ‘천제궁’을 만난다. 그 오른쪽에 ‘청학동 전통서당’이라는 간판이 붙은 문이 있다. 이곳이 현재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당으로 이 문을 통과하면 전통옷을 입고 머리에 대감모자(정자관)를 쓴 정병호 훈장을 만날 수 있다. 정병호 훈장은 3대째 훈장을 하고 있으며 현재 형제 중 한명도 공주에서 훈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병호 훈장이 전통옷을 입은 이유와 서당의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청학동 작은 도서관에서 사람들에게 체본을 써주고 있는 화봉 최기동 서예 선생님
전통옷을 고집하는 이유는 조상에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갱정유도’(更定儒道)라는 종교적인 이유다. 갱정유도의 원래 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동서학 합일 대도대명 다경대길 유도갱정 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 28자로 매우 길어 ‘갱정유도’라 줄여 부르지만, 더 짧게 일심교(一心敎)라고도 부른다. 교주 강대성은 1928년에 전라북도 순창군 회문산 금강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종교 이름에 교주가 생각한 ‘동서합일 세계평화’의 내용이 다 들어있다. 때가 되면 세계가 한마을이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제일이 집안이 화목하여 사람이 되는 것이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이 이 종교의 목표인 것이다. 처음엔 전국에 50만 정도의 신도가 있었으나, 현재에는 이곳 청학동에 50명 정도로 가장 많은 도인이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본부는 전북 남원 도통동에 있으며 이곳은 지부다. 천제궁에서 일년에 두 번 춘추대제를 지내는데 사월초파일과 시월초파일에 모신다. 이곳 청학동 천제궁에서는 간단하게 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당은 원래 갱정유도 신도들이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도덕적으로 살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운영되었다. 서당에서는 삼강오륜, 사자소학, 추구, 천자문, 학의지, 명심보감을 가르치며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시전서를 공부했지만, 현재 서당에서는 7-15세에 이르는 아이들이 와서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소학’을 배운다. 16세 이상 고등학생은 기숙학교를 가기 때문에 없다.
정병호 훈장이 ‘청학동 전통서당’ 툇마루에 앉아있다. 옆에는 그가 10년 동안 쓴 서예 연습지 두루마리가 쌓여있다.
‘청학동 전통서당’은 군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정 훈장은 관광객이 많은 주말에도 근무하며 월, 화요일이 휴무다. 관광객들은 서당에서 훈장과 얘기를 나누고 글도 읽으며 서당 체험을 한다. 정 훈장은 청학동에 대한 여러 가지 안내를 맡는 청학동 안내자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정 훈장이 서당 근무 외에 즐겨하는 일은 활쏘기와 글쓰기다. “누구나 살면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늘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정치하는 분들이나 조그만 마을, 가정이라도 운영하는 사람은 모두 중용을 실천해야 세상이 평화가 온다.”고 정 훈장은 말한다. “중용은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으로 결국 ‘과유불급’은 과한 것이나 모자란 것은 같은 것으로 ‘유’자는 같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화살을 쏠 때 과녁에 맞아야 덕행을 본다고 하는데 결국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면 중용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외 그가 즐겨하는 일은 서예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10년 동안 서예를 하고 있는데 서당 마루 한 켠에는 그가 쓴 연습지가 가득 쌓여있다.
청학동 작은도서관에 모여 날마다 글씨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그가 서예를 하는 곳은 ‘청학동 작은도서관’으로 서예 대가 화봉 최기동 선생의 지도로 저녁이면 약 20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밤이 새는 줄 모르며 서예를 한다. 서당 아래 살고 있는 화봉 최기동 서예 지도자는 어렸을 적부터 유명한 서예 대가를 찾아 전국을 다니며 글씨를 배운 분으로 여러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하동의 곳곳에는 그가 쓴 글씨가 건물의 입구나 입석에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청학동 작은 도서관에는 밤낮없이 소리 없는 검은 글씨가 춤을 추고 있다.
지나간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아 로봇의 도움까지 마다하지 않는 요즘 세상이다. 옛것을 귀히 여기며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꾸준히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오히려 새롭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