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읍내 축협 건물 앞에는 요즘 세상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작은 전동리어카에 낡은 음악CD와 USB, 소형 라디오를 파는 이지헌(남, 77세) 씨다. 8~90년대의 한때 ‘길보드 차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길거리 리어카에서의 판매량이 음반시장을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국민 1인당 1대 이상의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음원 스트리밍이 음악시장의 대세가 된 지 오래인 세상에서 이토록 낡고 오래고 희귀한 장사를 계속하고 있는 이지헌 씨를 만나봤다.
하동 시장에서 음반을 파는 이지헌 씨
문 : 요즘은 진짜 보기 드문 장사를 꾸준히 하시길래 한번 뵙고 말씀 좀 듣고 신문에 실어볼까 싶어서 왔어요.
답 : 하지 마~~ 다 늙어빠져가지고 뭘 그걸. 하하
문 :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정정해 보이시는데...
답 : 일곱. 칠십일곱이라. 음악 매일 들으니까 안 늙는기라~ 와하하하
문 : 요즘 장사는 좀 어떠세요? 하루에 몇 명이나 손님이 와요?
답 : 안 돼, 안 돼~ 요새 인자 USB 있잖아요. 그거 하나 사면 몇 년 써부리는디요. 고장도 안 나고. 하루에 하나, 두 개. 그저 많이 팔 때가 두 개. 날이 더웅께, 이제 봄가을 같은 때는 한 댓 개씩 나가고.
문 : 하루에 한 개씩 두 개씩 팔아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실 거 아니예요?
답 : 나이 먹어갔고 어디가 일도 몬 하겠고, 거 뭐, 어쩔낀가? 담뱃값이라도 벌고, 술은 안 먹는디 담배는 피워야뎅께...인자 그러구 살아, 혼자. 애들도 없고 아무껏도 없네.
문 : 자제분은 왜?
답 : 애들을 못 남겼지. 각시가 없응께 안 낳고. 요러고 살아. 음악 속에서 살아, 나는.
문 : 음악을 원래 좋아하셨어요? 음악을 직접 연주도 하시고?
답 : 그런 건 안 하고, 옛날에 그냥 하천 밑에 계곡 같은 데 가서, 목 쉰다고 계란 먹고 그런 생활은 했지. 이제 요래 각 지방으로 댕김서, 그때는 장사할 때니까.
문 : 그럼 평생 결혼을 안 하셨어요?
답 : 했는데, 마누래 죽고. 애들은 없고, 내가 못 놓은 기라. 요새 뭐, 이거 하민서 기초수급자 조금 나오는 그리로 사는기라. 그것도 이제 한 달에 방세가 25만 원씩 나가. 돈도 없고. 방 하나 그냥 골방 같은거, 한 달에 전기세, 수도세 하면 한 30만 원씩 나가.
문 : 장사는 얼마나 하셨어요?
답 : 한 30년 했네. 예전엔 잘 됐지. 지방엔 저 여수, 충청도 보령, 뭐 그런디 다 돌아댕겼지.
문 : 제일 장사가 잘 될 때가 언제였어요? 몇 년도에?
답 : 그때 IMF 전에. 그때는 USB 없고 테이프하고 CD도 간혹가다 하나씩 나오고, 제대로 박스(Box)든 거 그거 하나씩 나오고, 그 담에는 전부 복사판, 테이프도 복사판 그거 다 팔 때라. 그래갔고 많이 팔렸지. 저 진해 군항제 같은 데 가서 보면, 그때는 음악 세계라, 좋아~. 지금은 그거이 없어. 옛날에 관광지 같은 데 가믄 여자들 아주 신이 나제. 음악 쫌 쎄게 빠른 거좀 틀어주면 아주 좋아한당께.
문 : 하동에 오래 계셨으니 친구분들은 많으실 거아니예요. 학교는 다 여기서 나오셨어요?
답 : 없어. 학교는 이제 부산 사상에서 초등학교 댕기다가 중퇴했제. 천지간 외로운 사람이라, 내가. 이제 저 음악세계에서 상께 이제 받아들인 거지.
문 : 다른 일은 안 해 보셨어요? 농사일이나.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이 장사만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어요?
답 : 안 해 봤어. 이 장사 전에는 센베과자 그 장사 좀 오래 했고. 그땐 장사 잘 됐지. 이젠 요거 팔아갔고 담배 사 피우고, 그래도 담배값은 나와. 그래 매일 나오지. 심심하니까 매일 나오지. 토요일까정. 일요일은 나올 때도 있고. 이제 친구들 만나면 인자 놀러도 댕기고 뭐 묵으러 댕기고. 이렇게 살다 죽으면, 뭐 얼마나 살끼고.
이지헌 씨가 판매하는 오래된 음반들
문 : 요즘은 어떤 노래들이 잘 팔려요? 옛날에 카세트하고 CD 파실 때하곤 많이 달라졌죠?
답 : 좀 그거한 옛날 노래 같은 거. 요새 인자 젊은 사람들은 많이 없어. 옛날엔 복사판이 많이 나올 때고. 저 부산 오륙도 거기 가서 밤에 녹음시키가꼬 아침에 9시만 되면 전국적으로 싸악 풀고. 녹음을 밤에 배에서 하거든. 잡음이 들어가면 안 되거든.
그러니까 배에다 기계장치를 해갖고 바다에서 수십만 장을 찍어내는기라. 하나 나오면 화다다닥 바로 나와버리니까. 그리고 인자 거때는 300원, 500원. 카세트테이프가 그랬어. 인자 그거이 없어지고 CD, 그것도 근 30년 되네. 그기 나온지가. 그기 한참 들어가다가 요즘은 이제 차가 USB로 들어가니까 USB로 싹 바뀌는기지. 안 할 수도 없고, 그냥 나와서 앉아 노는기라.
문 : 한 자리에서 장사 오래 하셨으니 재밌는 일도 있었을 거 아니예요?
답 : 하~ 별거 없어. 옛날에 우리 어른들이 여기서 인삼장사를 하셨거든. 이제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오래 됐어. 어무니는 한 7년, 아버지는 한 15년 됐고. 지방 다닐 때 빼고. 하동서는 요자리서만. 딴데 안 가고. 여 주차장이 있고 그렁께 혹시나 조금 팔릴까 싶어가지고. 여기서 그냥 힘있을 때 내가 즐겁게 지낼라고 하는 거야. 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 또 내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고 사는 거야. 하루하루 지내고. 나이들면 죽는 거지, 뭐. 하하하.
문 : 사는 재미는 좀 어떠세요?
답 : 뭐 별게 있나. 집에 있으면 아주 혼자 그겅께, 답답항께 걷어놓고 혹시 한 개씩 팔릴 때도 있고. 글안하면 공칠 때도 있고, 드러누워 자다가... 그냥 날짜만 보내는 거지. 그래도 하루 종일 여깄으면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보는, 그 재미로 하는 거지. 다 그런기지, 뭐. 하하.
인터뷰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앉아계시던 다른 어르신이 한 말씀 하신다.
“음악 틀어놓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즐겁게 만들어주는기 웬 복이고.”
“하하하.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