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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알 수 없는 농민 지원사업

소통·변화·활력을 내세운 하동군, 농사 행정정보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이 기사를 쓰는 나는 농민이다. 바쁜 농사일 틈틈이 ‘하동주민신문-오!하동’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기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행정정보 제공에 소홀한 하동군의 민낯을 알게 된 사건을 겪었다.
들깨를 수확하는 농민들

하동군 홈페이지 ‘공고 고시’ 게시판에도 없는 농사 행정정보

지난 7월 27일까지 신청 기간이 만료되는 ‘2023년 로컬푸드 육성사업 수요조사 신청’이 있었다. 이 신청은 농업인 및 농업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수요조사이다. 그 내용은 로컬푸드 직매장 개설 및 시설개선, 꾸러미사업, 소규모농산물 판매시설, 직거래장터 개설(운영)을 사업에 따라 1천만 원에서 2억 원까지 지원하는 규모가 큰 사업이다. 수요조사에 응한 법인과 농민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수요조사 참여는 지원사업 신청과 버금가는 일이었다. 이런 사업을 계획하거나 진행하는 군민에게는 아주 중요한 지원사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사업을 농민은 알 수가 없었다. 행정정보를 가장 많이 올리는 하동군청 홈페이지 ‘공고 고시 게시판’에도 없다. 공고 고시란에도 없다면 어디에서 이 행정정보를 찾아볼 수 있을까? 어렵게 찾아낸 답은 각 읍·면의 ‘새소식’에 올라오는 이장회의록이었다.
이장회의는 대부분의 면에서 매달 10일과 25일에 두번 한다. 그 회의를 위해 준비한 자료이므로 회의 당일이나 그 이후에 올린다. 회의가 끝나고 1주일 후에 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이장회의록을 찾아보는 농민은 극히 소수이다.
7월 27일 마감인 사업을 7월 25일에, 그것도 인터넷의 면사무소 새소식 게시판의 이장회의록에만 달랑 올린다면 과연 농민들이 마감 기간 안에 알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본 기자는 7월 27일 오후 2시경 이장회의록을 열어 보았다. 마감 시간까지 불과 4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황당해서 안내서에 있는 면사무소 산업계에 전화를 했다. “회의록에는 마감기간이 27일까지이지만, 면에서 군청으로 넘기고 군에서 취합하는 시간이 하루 있어서 28일 오전까지 신청하면 된다”며 신청서를 작성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회의록 내용과는 달리 신청기간이 하루 늘어나는 것이 황당했지만, 행정 관례라고 하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장회의록을 찾아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더 황당해서 군청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해보았다.
통화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자 : 7월 27일 마감인 사업을 7월 25일에 이장회의록으로 올리면 농민들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나?
농산물유통과 로컬푸드담당 계장(이하 계장) : 이 사업을 7월 19일에 각 읍면에 내려보냈고, 면에서 이장회의를 통해 이장들에게 알리면, 이장들이 농민들에게 방송 등으로 홍보하는 구조다.
기자 : 이장회의를 25일에 했는데, 이장이 회의 당일 날이나 그 다음 날 방송으로 알리더라도 하루이틀 밖에 남지 않는다. 게다가 방송을 할 내용이 많을 때는 회의록 내용을 다 방송하지도 않는다. 또 새벽부터 일 나가는 농민들은 방송을 놓치는 일이 허다하다. 농민들에게 알려졌다고 생각하나? 군청 홈페이지 공고 고시에는 올렸나?
계장 : 7월 19일 각 면에 내려보냈지만 각 면에서 이장회의록을 언제 올리는지는 알지 못했다. 공고 고시에 올리지 못했다.
기자 : 마감 1주일 전에 면에 내려보내면, 면에서 각 이장에게 곧바로 알리고 이장들이 농민들에게 즉시 알릴 것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 아닌가? 면의 담당자가 군에서 내려오는 정보를 이장들에게 바로바로 알린다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졌고, 이장이 농민들에게 알린다는 것도 이장 마음에 맡기는 것 아닌가? 이장이 다른 일로 마을을 떠나 있으면 어찌하나?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구조는 무엇인가?
계장 : 앞으로는 군청 홈페이지 공고 고시란에 잘 올리겠다. 다른 부서에서도 빠짐없이 올릴 수 있도록 권하겠다.
기자 : 공고 게시판에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기초적인 일이다. 군청-면-이장으로 이어지는 정보 제공 구조에서 개선책과 개선을 책임질 사람이 있을 테니 군청에서 논의하고 결과를 알려 달라. 필요하다면 본 기자도 책임자를 만나 의견을 내겠다.
이장회의록에 올라온 지원사업 수요조사 안내문

마을 방송으로만 들어야하는 행정정보, 군민들은 깜깜이

담당 계장과 긴 통화에서 행정 정보 제공의 현 주소를 알 수 있었다. 군청의 행정정보는 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농민들이 직접 찾아내든지 아니면 이장의 마을 방송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하동은 노령사회다. 노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군민구성으로 볼 때 인터넷으로 행정정보를 얻는 사람은 극소수다. 각 면의 이장회의록 조회수가 100회도 안 되는 것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군청의 공고고시 게시판에는 수의계약이나 여러 내용들이 분류 없이 올려져 있어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도 정보찾기가 쉽지 않다. 남는 것은 마을 방송인데, 이는 이장의 생각에 따라 정보 제공이 안 될 수도 있다. 마을회관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거나 새벽부터 일을 나가는 농민들은 방송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처럼 황당한 행정정보 제공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것은 농사정보만이 아니다. 얼마전 ‘불법 옥외광고물(간판) 한시적 양성화’ 사업 안내 현수막이 각 면의 현수막 게시대에 붙었다. 자영업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업일 수 있는데, 이 정보도 군청 공고 게시판에는 없었다. 이장 방송도 없었다. 오직 현수막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다. 이 현수막이 얼마나 걸려있을지도 알 수 없다.

스마트시대, 정보제공부터 스마트해져야 정보를 알아야 불이익도 없다

군민들 대다수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다양한 정보제공 서비스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행정정보를 군민들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면 된다. 재난안전문자는 이미 하고 있으며, 각 면의 농협에서는 사업내용만이 아니라 하나로마트 할인행사까지 문자로 보내고 있다. 군청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
SNS를 통해 마을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이 소통하고, 군 행정정보도 공유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이미 주민들 스스로 하고 있는 마을도 많다. 군에서는 이장들에게 채팅방을 만들고 관리하는데 도움을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 담당 공무원이 채팅방에 직접 정보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가 생명이고 경쟁력임은 농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번 로컬푸드육성사업과 같이 정보제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지원사업은 정보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다. 정보가 소수에게 제한적으로 제공되면 ‘공무원과 가까운 사람들끼리 해 먹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6월 1일에 취임한 하승철 군수는 ‘소통, 변화, 활력’을 하동군정의 중심 방향으로 잡았다. 소통의 시작은 정확한 정보제공부터다. 군청 홈페이지 공고란에도 올리지 않고, 마감 기간 1주일 남은 사업을,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이장회의에 통보하고 마는 행정이라면 그 앞날은 참담하다. 변화와 활력은 여기서부터 찾아야 한다.

2022년 9월 /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