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의 시작 지점, 악양 초입에는 인도조차 없다
슬로시티 인증 13년 차의 악양면을 품고 있고, 군전역으로 확대 인증은 4년 차에 달하는 곳이 바로 하동군이다. 관광지를 중심으로 주차공간조성, 꽃길 가꾸기, 문화행사 활성화, 섬진강둔치의 도보길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민을 위한 다양한 교통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한 예로 악양면으로 들어가는 지방도(외둔마을 악양서로, 개치마을 악양동로)의 초입에는 여전히 인도조차 없다.
인도가 없어 여행자는 풀밭으로 걷고 자동차는 중앙선을 침범한다.
본 기자가 서울에서 하동으로 오는 고속버스를 타고 악양 개치마을에서 하차해 악양동로를 걸어 소축마을까지 걸어본 적이 있다. 편도 1차로 끝 흰색 실선을 밟아가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가 없어 도로의 갓길을 따라가는데, 비가 오는 날이라 자동차가 지나가며 튄 물에 옷을 적셔야 했다. 운전자가 보행자를 보지 못하고 갓길 가까이 운전을 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악양서로 또한 마찬가지다. 외둔마을에서 평사드레 문화교류센터(동정호 건너편)까지 인도가 없다. 주민들이 걸을 수 있는 안전한 보행로의 확보가 필요하다.
주민, 도보 여행자, 자전거 여행자 모두를 위해 걷는 길이 필요하다
하동군의 ‘귀농귀촌’사업, ‘농촌한달살이 체험’사업, ‘워케이션’사업 등에 참여해 하동을 방문하는 20대의 여행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빈도가 높다.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하여 마을을 여행하거나 도보여행이 불편한 이들은 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악양면 내에서 이동하다 보면 뚜벅이 여행자(도보여행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7월 15일, 악양에서 20대의 여행자 2명을 길거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 하동군 내에서는 택시를 이용하다 숙소까지 30분을 걸어 들어가는 길이라 했다. 짚라인 체험, 매암제다원, 숙소를 오가며 하동여행을 하는 동안 개인차량 없이 여행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들어보았다.
“1박 2일 일정이라 시간이 촉박해 하동은 모두 택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동터미널에서 매암제다원으로 택시 타고 올 때 창밖을 보니 길에 다 차밖에 없고 인도가 있나 봤는데 없는 곳도 있고...제가길을 몰라 택시 타고 온 길로 숙소로 가야 하나 (아... 숙소갈 때는 걸어서 갈 계획이었거든요.)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 숙소 오는 길은 인도가 잘 되어 있어 걷는데 무리는 없었어요. 좀 덥긴 했지만요. 하동이 너무 예뻐서 자전거 대여하는 곳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친구랑 계속 말했답니다.”
차량을 이용하는 여행자뿐만 아니라 도보 여행자, 자전거 여행자를 위해서도 안전한 길이 필요하다. 지역주민 또한 그 길을 편안하게 걸어다닐 수 있어야 한다. ‘보행자가 걷기 편한 도시,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로의 도약이 슬로시티 악양, 슬로시티 하동의 방향성을 더 잘 실현하는 방법일 것이다.
개치마을 악양 초입에 세워진 슬로존 표지판
허울뿐인 ‘슬로시티 하동’으론 부족하다
2009년 2월 악양면은 세계에서 111번째로, 국내에서는 5번째로, 차생산지로는 세계최초로 국제 슬로시티에 가입되었다. 2019년 12월 하동군은 군 전역으로 슬로시티 확대인증을 받았고 지난 2022년 6월에는 이탈리아 오르비에토(Orvieto)에서 열린 국제슬로시티 총회에서 ‘탄소없는 마을 및 생태관광 활성화’를 주제로 슬로시티 우수사례 콘테스트에 참가해 ‘환경 및 에너지 정책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주민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삶의 질이 실제 향상되었는지, 우리의 정체성을 잘 찾고 있는지는 돌아볼 일이다.
새로운 군정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슬로시티가 가지는 의미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정책의 집행 과정에 잘 녹아들었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슬로시티가 아닌 타 지자체에서도 자전거 친화도시(고양, 하남,서울, 광주 등), 보행자 친화도시(파주, 부산, 수원, 서울, 세종 등)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시 교통정책의 과제로 삼고 있다. 슬로시티 하동이라면 관광, 문화, 교통을 넘어서 폭넓은 분야에서 군정철학으로 슬로시티 개념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슬로시티(slowcity)의 개념
1.
정체성 없는, 획일적인 대도시와는 반대되는 개념의 느린 도시 만들기 운동
2.
지역의 고유한 자원(자연 환경·전통산업·문화·음식 등)을 지키면서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문화와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
3.
개인과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고 여유와 균형, 조화를 찾아보자는 의미
4.
현대 문명을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옛 것과 새 것의 조화를 위해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지향
5.
도시의 전통문화와 산업, 자연환경, 지역예술을 지키고자 지역민이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운동
6.
지역 특산물 및 전통음식의 가치 재발견, 생산성 지상주의의 탈피, 환경을 위협하는 대량소비와 무분별한 바쁜 생활태도의 배격,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다림 등의 철학을 실천하는 운동
7.
속도 경쟁, 양적 성장,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좋은 도시라는 인식 등 기존 도시발전 모델에 대안을 제시
8.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조화롭게 실현하는데 중점
(*한국슬로시티본부 홈페이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