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말 그대로 푸르다. 몸도 마음도 젊고 혈기왕성하여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는 시기라 말해진다. 무모함과 용감함으로 똘똘 뭉친 청년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에 이끌려 더 큰 도시로, 도시로 나아가곤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이왕이면 더 큰 물에서 놀아야하지 않겠냐는 말에 뭣 모르고 집을 나갔다가 10년을 서울에 있었다. 그 곳을 벗어나는 선택을 했지만, 공리처럼 받아들여지는 그 말에 완전히 반대하는 바도 아니고 지난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도 않는다. 지금도 매일 아이들을 만나면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자면, ‘그래, 더 큰 세계로 뻗어나가라!’하고 한껏 등을 떠밀어주고 싶다. 그렇다면 작은 규모의 지역에서는 푸릇푸릇 잎사귀가 자라나기 어려울까?
퇴사를 하고 짐을 빼고 아는 이 하나 없는 하동에 오면서 ‘에이,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쯤은 있겠지. 그렇게 돈 벌면서 차차 적응해 나가보자.’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읍에서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인 전단지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의 임금이 들어오는 것에만 의존하는 생활을 언제까지 연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에 풀칠을 못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여전히 내 마음은 푸르고 그 펄떡이는 마음을 세상에 펼쳐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과 음식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예민한 감각이 청춘의 담대함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하동은 푸른 자연에 둘러싸여, 푸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잎사귀를 한껏 피워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게 됐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오지랖 넓게 불특정한 친구들의 일자리를 걱정했던 적이 있다. 어딘가에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방식이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 곳에는 취직할만한 기업이 다른 도시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아, 친구들에게 여기에서 한 번 살아보라고 말하려 해도 먹고 사는 게 어렵겠네...’하며 잠깐의 꿈을 접어 고이 넣어두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서, 많은 것이 없는 이 곳에 이끌리듯 오지 않았던가. 따박따박 꽂히는 급여와 어깨에 지워지는 명예에 현혹되어 생기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뛰쳐나왔으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이 맞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며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져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꾸준히 자기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고 실험하고 나누는 방식... 가슴 뛰지 않은가? 사회적 잣대, 노골적으로 말해 얼마의 연봉이나 단단한 명패에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도전을 하기에 하동은 투명하고 자애로운 곳인 것 같다.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는 청년들은 그 여백에 무엇이든 그리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들이 모이면 분명 좋은 그림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좋은 그림을 그려나갈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민주
요가를 합니다. 아이들이 맘껏 웃고 힘껏 자랄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산과 강이 품어주는 이곳에 와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