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농민들의 목을 죄고 있다. 농민들의 목소
리를 들어보았다.
점심 먹기가 겁난다
농촌의 고물가는 당장 먹는 데부터 시작이다. 작년까진 백반정식 값이 7,000원 하던 곳이 제법 있었는데 올해 초에 거의 모두가 8,000원으로 올랐다. 그러더니 이제 9,000원이나 1만 원인 식당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심값이 25%까지 오른 셈이다. 아직 다수의 식당이 8,000원이지만 따라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격이 비교적 낮았던 냉면이나 칼국수 같은 면류도 7,000원~10,000원이다. 식당에서 점심 먹기가 부담스럽다.
“일꾼들 얻어서 일하면 일당도 비싸지만, 밥값이 장난 아녜요. 쌀 20킬로 한 가마에 6, 7만 원 하는데, 서너 명만 일해도 밥 사주고 새참이랑 물이랑 사면 쌀 한 가마 값이라요.” (송 씨, 남, 63세)
기름값이 왜 이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름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농민들이 많이 쓰는 경유값은 휘발유값을 추월하여 1리터에 2천 원이 넘기도 했다. 지금은 가격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1,800원 내외다. 트랙터, 경운기, 화물차를 쓰는 게 조심스럽다. 농민들에게는 면세유가 나오긴 하지만 필요한 양에 비해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면세유값으로 보면 경유가 휘발유보다 1리터에 300원 정도 비싼 편이라 농민들은 기름값 인상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8월 24일 농협 주유소 기름값 안내판
더 심각한 것은 등유다. 등유 가격은 올 1월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라 1,700원을 넘어섰다가 지금은 1,600원 내외다. 면세유 가격은 1,400원 내외다. 휘발유나 경유의 상승률보다 훨씬 앞선다. 등유는 난방유로 쓰이기 때문에 난방비 부담으로 농민들의 살림살이가 힘들어질 것이 뻔하다. 또, 등유가격 상승은 하우스 농가에겐 직격탄이다. 11월 하순부터 3월 중순까지 하우스 난방보일러를 돌려야 하는데 이 가격대로라면 하우스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한다.
8월 20일 농협 하나로마트 야채 판매대
“작년에 면세해서 1리터에 1,000원 정도에 썼는데, 매출액의 20% 정도 돼. 이게 1,500원으로 오르면 기름값만 매출액의 30%가 돼버려. 기름값, 비닐교체값, 모종값, 박스값 같은 자재비에 인건비를 따져보면 하우스 한두 동 농사지어서는 남는 게 없어. 농산물 경매가는 그대로거든.” (고 씨, 남, 71세)
마트에 가기가 무섭다
여성농업인 조 씨(여, 53세)는 마트에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오이 2개에 3,500원, 미니 단호박 2개에 5,300원, 청경채 3개에 1,300원이다. 손이 안 나간다. “내가 농사지은 걸 팔 때는 가격이 형편없는데 마트에 오면 너무 놀라요. 솔직히 화가 나요. 팔 때 살 때 가격 차이가 서너 배는 보통이에요. 요 몇 달은 더 심해요.” 그래서인지 팔려고 농사짓는 품목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양파나 참깨를 팔려고 농사짓는 사람이 드물다. 농사를 짓자니 인건비도 못 건질 것 같고, 사 먹자니 팔 때 가격을 생각하면 열만 받고 살 수가 없다. 결국 자기가 먹을 정도만 짓고 만다. 이런 품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상자 안 농산물 가격보다 비싼 포장재와 택배비
하동 농민들은 10킬로 한 상자에 1만 5천 원에서 3만 원 사이에 파는 농산물이 많다. 대부분 택배비 포함 가격이다. 물론 좋은 품질에 희소성이 높은 품목들은 더 비싼 가격을 받는다. 가격 구성을 따져보면 종이상자나 스티로폼 상자 등 포장재비가 2,000원 내외이고, 택배비가 4,500원이다. 택배비는 농협에서 20킬로 이하의 물건을 보낼 때 받는 비용이다. 농산물 한 상자를 보내려면 포장재와 택배비가6,500원인 셈이다. 이는 1만 5천 원짜리에선 43%이고 3만 원짜리에선 22%를 차지한다. 엄청난 비중이다. 이걸 농민 스스로 낮출 방법이 없다.
“작년까지 택배비가 4,000원 하더니 또 500원 올랐어요. 10킬로 짜리 스티로폼 상자가 2,500원이니 물건 싸고 보내는 값이 7천 원이에요. 1만 5천원짜리 보낼 때는 농산물값이나 싸서 보내는 값이나 그게 그거예요. 어떤 때는 울컥해요. 뭐하나 싶고... 판매가격을 올리면 좋겠는데 소비자들에게 비싸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고, 흥정하는 게 더 힘들어요.” (손 씨, 여, 55세)
해마다 인건비가 올라서 일꾼 쓰기가 쉽지 않아
농민들이 고령화되고, 젊은층 유입이 없는 농촌에서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외국인 농업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그 부족함을 메꾸었는데, 코로나로 외국인들이 들어오지 못하자 일꾼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인건비는 올라갔다. 근래 물가가 오르자 인건비도 덩달아 오르기도 했다.
“코로나 오기 전에 외국인 여자일꾼들 인건비가 하루 7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작년엔 8만 원, 올해는 9만 원이고, 이제 바쁠 때는 10만 원을 줘야 구할 수 있어요. 남자들은 인력사무소를 통해서 구하면 13만 원이에요. 보통 농사로는 그 인건비를 감당 못해요. 하우스나 특용작물 같은 걸 하면 몰라도... 아주 급할 때 아니면 안 써요. 농산물 팔아서는 적자에요. 어떨 때는 농사 때려치우고 일당벌이를 할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기술이 조금만 있어도 15만 원, 20만 원 받거든요.” (박 씨, 남, 57세)
모든 것은 다 오르는데 농산물 값만 제자리
원자재비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니 인건비도 오를 수밖에 없다. 일용직 농업노동자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농민들의 농산물 가격도 물가만큼 올라준다면 견딜만 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사 먹는 농산물 가격은 많이 올랐지만 농민들이 농협에 수매하거나 경매장에 파는 가격은 그대로다. 죽어나는 것은 농민뿐이다. 이대로라면 소농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전업농은 살아남기 힘들다. 고물가시대의 고통을 농민들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