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림을 좋아했다. 그런데 나의 성장기에는 그림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그 시대 보통의 아이들처럼 가난한 시절을 살았다. 또 타고난 그림의 재능도 없었다. 그 흔한 수채화 한 장, 만화 캐릭터 하나도 그리지 못했다.
서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집이 생기고 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집을 꾸민다고 방마다 그림을 걸었다. 부엌에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아이들 방에는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거실에는 제법 액자가 큰 클림트의 ‘키스’가 지금까지 떡하니 걸려 있다. 그때는 웃기만 했는데 요즘은 그 그림을 한 번씩 오랫동안 보기도 한다. 그리고 먼지도 한번 쓰윽 닦는다.
고흐는 옛날부터 이상하게 좋았다. 그의 슬픈 삶이 좋았는지 아니면 연민인지 모르겠다. 난 밝음을 좋아하는데 고흐 그림에 있는 외로움이 보였고 인생이 보였다. 사실 나는 고흐의 ‘자화상’을 더 좋아한다. 50대 나의 모습이 보여서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그림도 아마 그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 소희가 피포페인팅(유명한 명화나 캐릭터 도안 등을 따라 채색하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제품)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사 주었다. 1년 안에 다 그리라고 했는데 한 달 만에 다 그렸다. 너무 기뻤다. 거실을 지나가는 영준이에게 별이 나타나겠냐며 계속 물었는데 영준이는 그때마다 엄마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많이 그렸다고 힘을 주었다. 그렇게 지난 가을 난 조금씩 조금씩 고흐를 만났다. 그리고 내가 드디어 그림을 완성했다. 와! 눈이 빠지도록 번호를 맞추며 그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 기뻤다. 오늘 아침에도 안방 침대 맡에 있는 고흐를 보면서 일어났다.
다음 그림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이다. 이 그림은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의 별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이 그림도 좋아해서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아직 포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시작할 엄두가 안 나서 잠시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할 일을 찾아서 심심하지 않다. 수요일마다 서예를 하고, 생활개선회에서 하는 꽃꽂이 수업을 듣는다. 서예는 시작한 지 올해 4년째인데 올가을 개천 예술제에 서예작품을 내게 되었다. 나만의 호가 생기고 낙관이 생겨서 가슴이 뭉클했다. 꽃꽂이는 그냥 옛날부터 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막내 영준이도 나가고, 만일 도시 가까이 집을 구하게 된다면 문화센터에서는 서예와 꽃꽂이를, 집에서는 그림을 그리며 노후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난 재능은 없다는 것이다. 꽃꽂이도 서예도 그림도 난타(亂打)도 요가도 말이다. 하지만 플로리스트가 될 것도 아니고 서예가가 될 것도 아니기에 좋아하는 것 배우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이제 남은 내 노후를 즐겨보련다.
김다미(은천)
물 맑은 하동 화개골에서 아이 셋을 잘 키워내고 있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