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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 넘어 피자

공기가 지금보다 훨씬 가볍던 세 달 전 어느 날, 바람의 간지러운 리듬에 맞춰 반찬모임에서 야채를 총총 썰고 있었다. 그 날의 이야기재료로 어린이가 턱하니 올라왔다. “도시에 살 때는 별 고민이 없었는데, 여기 오니까 다른 애들이 눈에 밟히더라. 어린이날에 어디서 뭐하고 있을지 뻔히 보이니까...” 면 단위에 사는 어린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줄곧 집에 있다. 혼자 있거나, 할머니와 있거나, 형제들과 있거나. 유일한 재미는 핸드폰 세상이다. “음... 그럼 우리 애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런데 그냥 가면 재미없으니까, 걸어서! 또 우리가 지리산을 끼고 산다 아이가~” 그렇게 어른이 넷은 바로 다음 날 둘레길을 걸었다. 적량면에서 하동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은 바람재였고, 초대장의 이름은 <바람재 넘어 피자>로 정해졌다.
초대장
피자가 그려진 초대장이 적량초등학교에 바람보다 빠르게 퍼졌다. 일주일 뒤, 초대에 응한 아이들이 모두 시간에 맞춰 운동장에 모였다. “모두 준비물은 챙겨왔나요?” 여덟 명의 어린이들은 가방에서 물통과 손수건을 꺼내보였고, 어른들은 보자기에 꽁꽁 싸온 비밀의 간식을 선보였다. 각자 들 수 있는 것들을 나눠 담아 산으로 출발했다.
산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삐요옹, 촤아악, 쉬이익.. 하는 숲의 소리가 커졌지만, 어린이들의 조잘대는 소리를 이기지는 못했다. 재잘재잘 투닥투닥 키득키득. 학교에서부터 한 마디도 않던 가장 어린 아이도 옆에 있는 선생님에게만 들리도록 비밀 이야기를 꺼냈다. 숲소리는 그 아이만의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포근히 감싸주었다.
바람재를 넘는 아이들
쉴 새 없이 말을 하다 보니 쉬지도 않았는데 바람재에 도착했다. 간식으로 충전할 시간이다. 도시락통의 리본을 풀었더니 토마토와 오이가 있었다. 산 위에서 먹으니 맛있긴 한데,,, 뭔가 아쉽다. 그 순간 들려온 달콤한 소리. “얘들아 간식이 하나 더 있는데~ 보물을 찾아야 먹을 수 있어!” 보물찾기라는 말에 어린이들의 눈에 불꽃이 붙여졌다. 이야아아-! 모두 산으로 흩어져서 여덟 개의 쪽지를 가져 왔다. 쪽지에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맛있어 / 친구랑 / 제일 / 간식이 / 나눠 / ! / 먹는 / 같이] 어린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이러쿵 더러쿵 토의를 하더니 찢어진 단어를 이어 붙였다. “친구랑 같이 나눠 먹는 간식이 제일 맛있어 !”
산 속에 쩌렁쩌렁 보물상자의 암호가 울려 퍼졌고, 지켜보던 어른들의 가방에서 불룩한 봉지 과자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어린이들은 봉지를 펑펑 뜯으며 축하 폭죽을 터뜨렸고, 정말로 친구랑 같이 맛있게 간식을 나눠 먹었다.
간식 먹기 미션
배도 불렀으니 다시 출발! 점점 깊어질수록 재잘대던 소리들이 줄어들었다. 팔 다리가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피자집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산 속인데... 그 때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하나, 둘 목소리가 얹혀 지더니 순식간에 숲 속 합창단이 결성됐다. 나뭇잎으로 뒤덮인 그 곳에 노래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리듬을 타듯 언덕을 탔다. 새들도, 두더지도, 뱀도, 나무들도, 돌들도 제 공간에서 움직이며 화음을 맞춰주었다. 그 순간! “이야! 마을이 보인다!” 맨 앞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 달려가보니 너른 바위가 있었고, 탁 트인 산 아래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저 어딘가에 피자집이 있겠지? 노래 소리는 마을 어귀에 도착할 즈음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어린이들의 심장은 기억하고 있다. 힘찬 발걸음으로 다져진 우리들의 박자를. 얘들아~ 이제 피자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