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몰랑뜰 정원
퇴직을 앞둔 이들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많은 꿈을 꾼다. 복잡한 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나만의 정원을 가꾸고 싶다는 로망을 한 번쯤은 가질 것이다. 정원이 주는 한적하고 향기롭고 고즈넉한 이미지를 그리며, 마치 사철 정원의 꽃이 늘 그렇게 밝고 환하게 피어줄 것이라는 환상에 젖는다. 여기 그 정원의 꿈을 이룬 이가 있다. 하동군 청암면 깊은 골에 자리 잡은 ‘몰랑뜰’ 주인 조미정(68) 씨다.
산자락을 가꾸어 몰랑뜰 정원을 만든 조미정 씨가 잠시 쉬고 있다.
그녀는 타샤 튜더의 책 <타샤의 정원>을 읽은 후 꿈의 정원을 마음에 그렸다. 부산에서 퇴직한 후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하동 지리산 자락 깊은 산골로 들어왔다. 척박한 산자락을 손수 삽질을 하며 꽃이 자랄 수 있는 땅으로 가꾸어 나갔다. 아침에 눈 뜨고 밖에 나가면 마당을 손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허리를 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쪼그리고 앉아 정원을 손질하고 꽃을 심다 보니 무릎에 문제가 생길 지경이 되었다. “꽃이 예쁘게 피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나가다 풀이 보이면 그 자리에 앉아 뽑다 어느새 시간이 가곤 해서 제대로 된 꽃사진 하나 없습니다.” 그녀는 하하 웃으며 말한다.
2016년부터 땅을 일구며 테마를 정하여 영국 화이트정원, 만병초 그늘정원, 수국정원, 장미원, 여름정원, 겨울정원으로 가꾸어 나갔다. 소문을 듣고 방문한 사람들은 혼자 보기 아깝다며 정원을 개방하라고 권고했다. 애초에 자신만의 정원을 꿈꿨던 그녀는 정원을 개방할 경우 생길 수 있는 혼란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꽃과 나무를 감상한 사람들은 차분히 앉아 차도 한잔 마시며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과 시간을 원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생각도 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름다운 개인 정원으로 널리 알려져 산림청과 하동군에서 상도 받았다. 지금은 예약을 받아 정원을 오픈하고 있지만 산비탈을 정리해 정원을 만들다 보니 오는 길이 험난해 방문하는 이들에게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여러가지 진귀한 식물이 가득한 몰랑뜰 정원. ‘몰랑뜰’은 높은 언덕배기에 있는 논이나 밭을 가리키는 방언이다.
식물은 생물이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꽃들도 사람같이 물과 햇빛이 꼭 필요하고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가물었을 땐 물을 주어야 하고, 웃자란 것들은 다듬어 주어야 하며, 함께 자라나는 풀들은 제거해 주어야 한다. 가물었을 때는 일일이 물을 주어야 하며 비와 바람에도 안심할 수 없다. 계절마다 다른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꽃에 관심이 많다 보니 새로 나온 품종들을 내 마당에 들이고 싶은 욕구도 함께 커진다. 이제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든 부분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10여 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는 ‘생각지 않던 숙제를 풀어야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2개의 국가정원이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전남 순천시), 태화강 국가정원(경남 울산시). 지방의 특색을 살린 지방정원은 15개소가 등록되어 있다: 세미원(경기도 양평군), 죽녹원(전남 담양군), 거창 창포원(경남 거창), 연당원(강원도 영월군), 구절초정원(전북 정읍), 천년숲정원(경북 경주), 화개정원(인천 강화군), 낙동강정원(부산 사상구), 줄포만 노을빛정원(전북 부안군), 해뜰마루정원(전북 부안군), 지리산정원(전남 구례군), 광주호 호수생태원 지방정원(광주 북구), 아산 신정호 정원(충남 아산시), 좌광천 지방정원(부산 기장군), 세천늪테마정원(대구 달성군).
그 외에도 도에서 정하는 민간정원이 있는데 경남에는 41곳이 있고, 하동에는 ‘몰랑뜰’(하동군 청암면 깊은골길 2-1)과 ‘다소랑정원’(하동군 청암면 삼신봉로 96)이 등록돼 있다.
하동군은 올해 ‘2025 하동 인생정원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숨은 정원을 발굴하고, 하동형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평가는 개인 정원과 상업 정원 두 가지 분야로 진행됐다. ‘최고의 정원상’은 하동읍 ‘자연이 품은 정원’의 여승원 씨와 화개면 ‘하동 더로드 101’의 정길웅 씨에게 각각 돌아갔다. ‘아름다운 정원상’은 하동읍 ‘화양연화’의 김상우 씨, 화개면 ‘따신골 녹차정원’의 하근수 씨가 수상했다. 하동군은 최근 하동 곳곳에 크고 작은 정원을 마련하고 있으며 길가의 가로수 조성에도 열심이다. 하동군 주민 모두가 길가에 심겨진 꽃과 나무가 잘 자라 하동군이 꽃과 숲에 둘러쌓일 수 있도록 마음과 정성을 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옆집 순천만의 본을 받아 멸종 위기급 새가 자주 찾는 갈사만에도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 대신 꽃과 새를 볼 수 있는 정원이 들어서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