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8기 하승철 군수의 ‘지역맞춤형 명문고 육성’ 공약 이행을 위해 하동고와 하동여고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동군 행정과 미래교육TF팀은 ‘고고통합 군민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하동군 행정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여론전을 펼치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파트 방송으로 서명 독려, 마트에도 비치된 서명용지
“하동군에서 하동고등학교·하동여자고등학교 통합을 추진하며 범군민 서명운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통합을 위하여 하동군민으로서 서명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렸습니다”
5월 16일, 진교면의 한 아파트에 울린 안내 방송이다. 주민 L씨는 “면사무소에서도 서명을 하는데 다른 지역 사람이 본인은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괜찮다며 서명을 받아갔다. 진교면이 가장 저조하다는 말과 함께 서명을 적극 권장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서명용지는 면사무소, 보건소를 비롯한 관공서뿐만 아니라 읍과 면의 하나로마트에도 비치되어 있다.
하동읍 하나로마트에 비치된 서명부
작년에 진행한 통합 설문조사는 폐기, 학원연합회에 설문협조 요청하기도
4월 15일에는 하동읍의 학원장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가 전달되었다.
“하동군청 협조사항입니다. 읍내 중학교 통폐합과 관련하여 학원 원생 대상 설문조사를 해줬으면 하네요.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다소 미온적이라 학원연합회에서 협조 가능한지 질의가 와서 원장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자유롭게 의견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읍내의 중학교 통폐합은 고교 통합 논의와 따로 뗄 수 없다. 하동여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하동육영원’이 중학교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동군 행정과는 학교와 교육청이 협조적인 태도가 아니다 보니 에둘러 설문조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설문조사는 이미 진행된 바가 있다. 작년 9월에 교육대토론회를 앞두고 군청에서는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했고 이때에도 통합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행정과 담당자는 “작년에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가 한 사람이 여러 번 할 수 있었고 아무나 접근할 수 있어 믿을 수가 없다는 의견이 있어 아예 폐기를 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설문조사가 없어 고민을 하다가 누가 제안을 해 줘서 학원에 애들이 많이 오니까... 확정된 건 아니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기획을 해 본 거다” 라며 다시 설문조사를 기획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는 정책적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는 행정과 담당자는 “조금 과격하고 성급하고 이런 부분 인정한다. 20년 가까이 너무나 보수적이고 아예 귀를 막고 있으니까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고 사실 학부모들도 별 관심이 없다. 하나씩 의견 모아서 듣고 이러면 말은 좋지만 정책이 진행이 안 된다”며 다소 무리한 서명방식과 설문조사 진행에 대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좌) 하동고, (우) 하동여고
고교학점제 실시로 2025년부터 절대평가 제도로 전환, 소규모 학교의 필요성 강조하는 하동여고
“60년도 작은 역사가 아닌데 지금까지 해 왔던 하동여고의 역할이 있지 않습니까. 유지가 안 되면할 수가 없는 거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 있게끔 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군수님의 공약 사항 중에 하나 들어 있다고 해가지고 막 그렇게...”라며 심정을 토로한 하동여고 교장은 군청에서 말하는 명문고가 무엇인지, 통합하면 반드시 1더하기 1이 2가 되는지, 남학생들은 더 불리할 수가 있고 여학생들도 빠져나가는 등 단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특히 현행과 같은 상대평가제도에서는 학생 수가 적을수록 불리하여 통합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2025년부터 전면 절대평가제도로 전환되고 내신보다는 세부능력 특기사항이나 행동 발달사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거다. 그러면 소규모 학교가 더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교사가 학생을 세밀히 관찰해서 기록을 정확하게하면 입시 경쟁에서는 더 우위에 있을 수 있다” 며 소규모 학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에 208명이었던 학생 수가 현재 128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해 온 상황에 대해, 하동여고 측은 한 학년 당 두 학급이 유지되지 않으면 학교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향후 닥쳐올 존폐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하동여고 교장은 “지금은 우리가 평행선이지만 자꾸 만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정기적인 모임이 없거든요. 자꾸 대화를 해야지 너무 일방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지”라며 교육문제를 정치와 경제 논리로 풀어나가려는 군 행정에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협의테이블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5월 25일부터 민관협의체 운영, 원칙과 절차를 잘 지키는 숙의민주주의 실험의 장이 되기를
통합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끼리의 정기적인 논의와 만남의 자리는 필수적이다. 여태껏 없었다는 게 의아한 일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경남도교육청에서 민관협의체 구성을 제안, 5월 25일에 그 첫 만남을 시작한다. 민관협의체는 하동고와 하동여고 교장, 학교운영위원장, 학부모회장, 하동여고 이사회 추천인사 1명, 교육지원청 관계자, 군청 관계자로 구성된다.
하동군 행정과의 주장대로 20년간 숙원해 온 고교통합이라면 목표를 향한 발걸음은 신중해야 한다. 교육의 3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통합에 대한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첨예한 이해관계에 있는 관계자들끼리의 협의도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통합이라는 결과물 이외에도 지역공동체 구성원 간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실현할 수 있다. 고교 통합,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
5월 25일, 고교통합 논의를 위해 민관협의체 첫 만남 가져
경남도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첫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이날 회의에는 강희순 군의원, 김구연 도의원을 비롯하여 군과 교육청 관계자, 하동여고 이사장, 하동고 교장, 학부모회장, 동창회장, 학교운영위원장 등이 참석하여 서로의 입장 차이를 재확인했다고 한다.
군은 고교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고, 학교법인 하동육영원은 원칙적으로 통합에 반대한다. 교육청은 정책적으로 통합은 필요하며 지역 내에서 협의되는 대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민관협의체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만남을 가질 예정이지만, 하동여고 측이 계속 참여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