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든한 살이지만 농사짓는 일이 제일 좋다는 이강시(남. 81. 악양면) 어르신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동은 고령사회이고, 농민이 압도적으로 많은 농촌이다. 하동에서 어르신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아보고 싶어서다. 어르신이 해 준 말씀을 추렸다.
이강시 어르신이 제피나무 옆에서 활짝 웃고 계시다.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어.
기자 : 하동에 사신지 얼마나 됐어요?
어르신 : 이 마을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으니 80년이 넘었지. 집은 몇 군데 옮겼지만 이 마을을 떠난 적은 없어. 아, 군대 갔을 때는 마을을 나갔지. 제대하고 바로 부산에 가서 형님 밑에 살라고, 버스 문짝 만드는 공업사에 들어가서 살아볼라고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 스물 다섯 살 땐데. 1년도 못 다니고 들어왔어. 내 적성에 안 맞아. 기계를 몰라서 나이 작은 동생들 밑에서 배울라니까 더럽대. 남한테 지배 안 받고 잡고, 못 살겠대. 그때 말고는 나간 적이 없어. 농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좋아.
일이 눈에는 환한데, 혼자 할라니 잘 안 돌아가.
기자 : 농사는 얼마나 지어요?
어르신 : 얼마 안 돼. 고사리밭이 좀 있고, 저 산에 제피나무 좀 있고, 감나무가 네 군데 있어. 논 네 마지기는 하우스 하는 사람에게 빌려주고, 두 마지기만 집 양식할라고 나락 심어. 요즘엔 날마다 고사리 꺾으러 가. 아침에 저 사람(아내)이랑 가서 꺾어오고, 5월 말에는 제피 따서 팔아. 킬로에 3만원쯤 해. 제피가 돈이 좀 돼. 내 손으로 산에 난 제피를 파다 심고, 접을 다 붙였어. 300개가 있었는데 오래 돼서 거의 다 죽었어. 세월이 흐르면 죽더라고. 제피 따고 나면 감나무 밭 풀베고, 약치고 그러지. 작년에 대봉감 150상자 땄어. 그걸 집사람이랑 둘이서 손으로 깎아서 감말랭이 만들었어. 이리저리 나눠 먹고 팔고 했지.
기자 : 농사가 많은데요? 하실 만 한가요?
어르신 :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지금까지 일만 하고 산 사람인데 막힐 게 뭐 있겠어. 예취기도 내가 해. 우리 마을에서 예취기를 내가 제일 먼저 샀어. 젊을 때는 험한 일도 많이 했어. 똥오줌 푸고, 동네 방앗간에 들어가서 월급식으로 일하기도 했고. 농사를 많이 벌리기도 했는데, 이젠 많이 줄였지. 일은 눈에 환한데 일이 잘 안 돌아가져. 내 혼자 할라고 하니까. 감나무 전지는 다 못하고 끝나고...
논을 둘러보는 이강시 어르신
생활유지비가 제법 들어. 내 먹고 사는 거는 내가 해.
기자 : 두 분이 생활하는데 돈이 제법 들텐데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어르신 : 국민연금하고, 노령연금 두 사람 거 합하면 80만 원쯤 되는데, 그걸로는 어렵지. 국민연금은 내가 95년, 96년 이장을 했는데 그때 제일 작은 걸로 들었어. 몇 년 안 돼서 국민연금 받을 나이가 됐다고 목돈으로 받을 건지 돈을 좀 더 넣고 다달이 받을 건지 묻대. 돈을 더 내고 달마다 받았지. 벌써 오래 받았어. 노령연금은 전기요금이랑 핸드폰 값이랑 보험이랑 나가고 좀 쓰고 나면 없어. 차(1톤트럭)에도 돈이 많이 들어가. 기계들 고장나면 수리도 해야 되고, 농사 지은 걸로 돈을 만들어야 돼.
농사를 짓다 보면 자기에게 맞는 게 있어. 딱 맞춰져. 내는 지금 고사리랑 제피랑 감이랑 해서 생활유지는 되지. 농사짓고 살아보니까 저축하고 쌓이는 건 없어도 돈 쓸 데가 생기면 돈이 만들어져. 희한하게 그리돼. 한 30년 전에 아들 공부시킬 때 매실도 가격이 좋았어. 그 당시 킬로에 500원 했는데 하루 따오면 10만 원이 훌쩍 넘더라고, 판로도 걱정이 없었어. 경운기에 싣고 내려오면 장사꾼들이 마을회관에 와서 기다렸다가 사 가. 작은 것도 싹 다 가져갔어. 돈이 필요한 만큼 벌리더라고.
기자 : 자식들이 안 도와주나요?
어르신 : 그런 거 없어. 지들은 지들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사는 거제. 내 먹고 살 거는 내가 해. 그게 속편해. 큰아들은 미국에서 결혼해서 살아. 시민권도 얻고. 작은아들도 지대로 살고. 아, 큰 돈 한 번 받았어. 몇 년 전에 차 접촉사고가 났어. 큰아들한테 전화해서 차를 한 대 사야겠다 했더니 2만불 부쳐주대. 그걸로 저 차 샀어.
내년에 운전면허 적성검사하는데, 차가 없으면 걱정이야.
기자 : 나이 들면 운전면허증 반납한다고 하던데, 어르신은 그런 이야기 없나요?
어르신 : 아직은 없어, 치매 검사 받아서 불합격이면 면허증 반납이라카대. 그게 걱정돼서 얼마 전에 병원 가서 내년에 내가 적성검산데 그거 미리 좀 해봅시다 해서 검사를 했는데 하나 틀렸어. 거의 만점이래. 걱정이 없대. 더 나이 들어 면허증 반납하게 되면 4륜 운반차 사서 끌고 다니면 돼. 친구들끼리 만나면 그 걱정이 많아.
내가 묻힐 땅도 만들어 놨어. 잘 죽는 게 복이야.
기자 :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은 없어요?
어르신 : 특별한 거는 없어. 지금처럼 편히 잘 살다가 어찌 잘 죽느냐 그 한 가지가 소원이지. 병치레 고생 안 하고 밤새 안녕으로... 그게 큰 복이라. 죽는 복도 오복에 들어가는 기라. 말년에 거동이 불편해지면 아래채에 살라고 화장실도 넣어 놨어. 위채는 화장실 바깥에 있어. 아래채에 혼자 살다가 갈 계획이라. 내 묻힐 땅도 미리 만들어 놨어.
이강시 어르신과 아내 임남엽(여. 76)님이 집 축담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모습
일이 사는 낙이지. 일하고 나면 저녁에 마음이 편해.
기자 : 농사지으면 어떤 게 제일 보람인가요?
어르신 : 내가 농사지어서 줄 데 주고 쓸 데 쓰고, 그때 보람을 느끼지. 고사리 한 근이라도 꺾어 줄 데 주면 전화가 와. 잘 받았고 잘 먹겠다고 그래. 그러면 상당히 기분이 좋지. 일이 사는 낙이지. 일하고
나면 저녁에 마음이 편해.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거야. 사회에 바라는 건 딱히 없어. 농사지으며 인생 잘 마무리하는 게 제일 큰 일이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강시 어르신의 말씀에는 힘이 있고, 기억도 생생하며, 판단도 명확하였다. 앞으로 할 농사일도 훤하게 계획하고 있었다. 제피나무가 제법 많이 죽어서 다시 심을 계획이라는 말씀에는 설렘도 느껴졌다. 현역 농사꾼으로 고됨과 즐거움이 함께 녹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