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석
사천·남해·하동 환경운동연합 대표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썪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의 노랫말이다. 하동종합고등학교에 처음 부임하여 3년만에 전교조 활동으로 쫒겨나 함양실업고등학교로 전근당한 게 1992년이니 정확히 30년 전이다. 내가 총각 시절이었고 실업계 고등학교이다 보니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환경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분리수거로 모은 폐품들을 팔아 교내장학금을 주고 매주 환경교육과 노래·율동배우기 시간도 운영했었다.
30년 전에는 오늘날처럼 기후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기 전이었지만 경제성장의 여파로 플라스틱 사용과 공산품의 생산, 판매가 급격히 늘어나던 시기였고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던 시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환경문제는 여전히 심각한데 우리는 편리함에 젖어 미래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서로 싸우는 ‘붕어’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우리 인간들이 개발과 소비로 쏟아내는 쓰레기와 에너지 소비는 지구를 ‘썩은 연못’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슬프기 짝이 없다.
오늘날 전세계의 화두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생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에너지 문제는 심각하고 민감한 의제로 부상했다. ‘정의’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이다. 지구촌 전체는 하나의 공동체이며 하나의 대기권으로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 자신만의, 우리나라만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탄소를 배출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불의’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지구를 살리는 정책으로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
지구의 역사를 보통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백악기, 쥬라기 등으로 분류하지만, 한편에서는 지금 이 시대를 지구 역사에 견주어 ‘인류세’라고 일컫기도 한다. 인류세가 지속되는 기간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지구는 무생물이 아니다. 지구 내부에는 용암이 꿈틀거리며 심장이 뛰고, 지각변동으로 대륙이 움직이며 근력운동을 하고, 바다는 해류와 조석의 변화로 피가 흐르고 있으며, 대기는 대류와 바람으로 숨을 쉬는 거대한 생명체이다. 모든 생명체가 병들거나 죽어 소멸하듯이 지구 또한 현재 심각한 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기 중에 온실가스는 0.0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미량의 온실가스가 증가함으로써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고 엘리뇨, 라니냐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을 일으킨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훔쳐다 준 인류의 구원책이었던 불이 오늘날 인류를 멸망시키는 제우스의 형벌로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는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숨이 헐떡거릴 정도로 턱 밑까지 물이 차올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깨닫는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2018년 스웨덴의 작은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외쳤던 기후위기와, 그녀가 제안한 기후행동은 세계인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교토의 정서’ 채택이나 ‘유엔기후협약’과 같이 기후문제에 대한 노력이 있었지만 툰베리의 작은 외침이 ‘RE100(신재생에너지) 캠페인’이나 ‘글래스고 기후협약’과 같이 국제적 공론화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도록 이끌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를 계기로 여러 나라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란 민간단체들이 결성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제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모든 국가의 지향점이자 의무가 되었고 탄소중립을 실현할 새로운 에너지 개발은 인류의 필연적 사명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탈석탄’과 ‘2050 탄소중립’ 선언 등 세계적 흐름을 흉내내는 듯한 에너지 정책을 펼쳤지만, 그마저도 보수 정치권과 기업인들의 반대 목소리에 점차 사그러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지구 살리기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수준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보다도 못하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세계사의 흐름에 비추어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 발전량 비중을 원자력 32.4%, 석탄 19.7%, LNG 22.9%, 신재생 21.6%, 수소·암모니아 2.1%로 전망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을 재추진할 뿐 아니라 10~20년 내로 좌초자산*이 될 LNG발전과 탄소배출의 주적인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을 턱없이 높게 잡고 있다.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석탄발전 설비인 당진1~4호기, 보령5~6호기, 삼천포3~6호기, 태안1~4호기, 하동1~4호기, 동해1~2호기를 폐기하고 LNG발전소로 전환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때까지 폐기하는 20기의 발전용량은 9.5GW이다. 2031년부터 2036년 사이에는 하동5·6호기와 태안 5·6호기, 영흥1·2호기, 당진5·6호기를 폐쇄하고 LNG발전소로 전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전력 수급 계획이 이러니 지난 2020년부터 3년 연속 ‘기후투명성평가’에서 가장 낮은 등급인 ‘매우 불충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동의 대송산업단지 부지에도 LNG발전소 건설 계획으로 갈등과 잡음이 끊이지 않고 명덕마을 주민들은 기존의 화력발전소로 인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지구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을 담고 있는 절대적 생명체이다. 이러한 지구의 영속을 위해, 아니,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개발과 성장을 늦추고 속도를 줄여 지구를 숨 쉬게 하는 일이다.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야말로 인류번영을 위한 최고의 사업이요 가치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독일과 같이 철로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덴마크와 우루과이처럼 풍력발전을 확대하여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극대화하여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
자연은 인류가 없어도 유지되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 생존할 수가 없다. 더 정확하게는 지구는 인류가 멸종하면 더 좋은 상태로 잘 유지될 것이다. 나는 간혹 사석에서 농담조로 “정의로운 자살 모임”을 만들어 지구에 도움이 되고 인류의 멸망이 지연되도록 하자는 엉뚱한 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충격적이고 기괴한 주장이지만 정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는 말”이라며 호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해 보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인류를 비교해보면 유일하게 지구에 해를 끼치는 생명체가 인간이다. 다른 생명들은 우주의 섭리에 따라 지구를 유지하고 지탱하게 하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구더기가 인간에 비해 지구에게는 훨씬 이롭고, 심지어 바이러스도 생물 종별 개체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대자연의 섭리라 하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확산도 어쩌면 인류라는 종의 개체수를 조절하여 위기의 지구를 구하기 위한 조물주의 준엄한 심판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행하는 과도한 개발과 소비행위는 지구의 생태환경을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를 파멸로 이끄는 ‘불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불의한 개발이나 소비활동을 줄이
고 조금이나마 지구에게 이롭게 바꾸는 것이 바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편하게 살아보자!
※ 좌초자산 : 급격하게 가치가 하락하여 더이상 수익을 못내는
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