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오하동> 머리기사 “광양시, 관광단지 개발하겠다며 섬진강 종점 변경 추진”을 보고 전남도와 광양시의 ‘돈벌이’ 아이디어에 경악했다. 전남도의회가 관광단지 개발을 위해 ‘광양시 하천수계 종점 현실화’를 한다는 내용, 또 ‘종점 현실화’란 미명 아래 섬진강 하구 종점을 현재의 배알도 인근에서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 인근으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보기엔 섬진강 하구가 관광단지로 개발되는 일은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돈벌이에 눈이 먼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파괴나 폭우나 홍수 때 발생할 사회적 위험은 도외시되기 때문!
이미 우리는 포스코 광양 제철소나 하동 갈사만 산업단지, 그리고 하동발전소 건설을 통해 경제개발이 자연 생태계나 주민들의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잘 안다. 물론, 새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바로 그로 인해 자연 파괴나 암 발생 등 유병률 증가, 잘못된 계산으로 인한 천문학적 매몰비용 발생이란 부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만일 한 개인에게 ‘수억 원 벌려면 네 건강(목숨)을 희생하라.’고 하면 어느 누가 ‘좋소!’라며 달려들겠는가? 하물며 자손 대대로 살아야 할 이 아름다운 강산을 희생시켜 관광호텔, 사우나, 찜질방, 유흥주점 등을 만들려 하면, 일부 사업가 이외에 그 누가 ‘좋다!’라며 환호하겠는가? 물론 이런 대형 사업에는 다른 변수들이 붙는다. 그것은 개인의 경우와는 달리, 행정가, 정치가, 금융인, 법률가, 투자자, 시행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일종의 동맹체를 형성, 개발 이익을 나누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업 구상은 밀실로 들어가고, 현지 주민들이나 자연 생태계는 주요 의사 결정에서 배제된다. 물론 일부 주민들은 작은 이권사업 기회가 생기고 일자리를 얻어 푼돈도 번다.
그 와중에 주민 간 갈등도 생긴다. 갈수록 공동체는 해체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분위기로 된다. 그러나 막상 개발 뒤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역은 황폐화하고 주민들은 더 이상 이웃이나 자연과 더불어 정겹게 살기 어렵다. 그렇게 수십 년 지나면, ‘차라리 옛날이 더 나았어!’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다. 이런 교훈을 우리는 언
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나?
흔히 현대인을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인간이라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대체로 ‘계산 속’이다. 그래서 ‘제 꾀에 스스로 속는’다. 이미 덴마크의 플뤼브예르그 교수가 ‘마키야벨리주의 공식’을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개발사업 등 대형 프로젝트 제안자들이 각종 비용이나 환경 영향은 과소평가하되 개발 효과와 기대 수익은 과대평가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 따지고 보면, 각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케이블카 사업, 섬과 섬을 잇는 교량 사업, 관광단지 개발사업 등이 대개 이 공식을 따른다.
화려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보면 ‘모두’ 혜택을 보고 ‘살기 좋은’ 지역이 된다. 그러나 막상 시행에 들면? 시간이 갈수록 비용은 불어나고, 화려한 준공식 뒤에는 적자 속에 막대한 세금이 ‘밑빠진 독 물 붓기’다. 건설 당시의 사업주나 행정가들만 돈과 표를 얻고 떠난다. 그 이후는? ‘나몰라라!’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는 ‘약아빠진 어리석음!’
시간이 지나 부정부패에 연루된 이해관계자들을 검경에 고발하고 수사한 뒤 몇몇을 감옥에 집어넣은들, 이미 망가진 자연을 복원할 길은 없다. 교육이나 복지에 쓸 소중한 혈세를 이미 낭비해버리고 나면 받아낼 길도 없다. ‘잘 살아보자’고 한 일이, 실은 ‘잘못 사는’ 일이었음을 ‘나중에’ 깨달아봤자 소용없다. 그저 소박하게 이웃
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정답인데, 지혜롭다는 인류가 이걸 모른다.
이미 우리는 갈사만 산업단지 사례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동해, 남해, 서해 바다도 마찬가지! 차라리 바다를 그대로 두고 경제와 생태의 조화를 추구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나마 남은 섬진강, 그 하구라도 제발 내버려 두시라. 그리고 자연을 보살피면서 자손 대대로 살아갈 이 국토를 정말 사랑해 보시라. 그게 정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