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home
이슈/사회
home

‘묻는 일을 묻는 사람들’과 함께한 <살처분의 애도와 기록> 좌담회

최근 5년간 재난형 가축전염병 아프리카돼지 열병은 총 46회 발생했으며, 294호 농가에서 돼지 55만 6,332마리가 살처분(殺處分)되었다. 구제역은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총 391만 마리가 살처분되었으며 보상금은 최근 5년간 5천억 원이상 소요되었다. 하동군에서도 2014년 고전 닭농장, 2017년 진교 오리농장, 그리고 2022년 옥종 오리농장에서 살처분이 이루어졌다. 다음은 지난달 11일 살처분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묻는 일을 묻다’ 의 활동가 5명(희음, 몰라, 혜리, 윤영, 기린)과 하동 주민이 모여 살처분에 대해 나눈 대화의 일부다.(가나다 순)
10월 11일 <살처분의 애도와 기록> 좌담회
강수돌: 살처분이나 대량축산 문제 관련, 갈수록 잘 보이지 않게 되는 현상에 대한 지적에 공감했고 교육과 언론이 더욱 분발,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기존 교육, 언론 외에 학교 밖 교육도, SNS를 통한 시민언론 운동과 대량축산에 맞서기 위해 제도적 규제와 건강 관련 장기적 추적 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축산업 사료나 동물 건강이 좋지 않아 갈수록 질병 위험이 많은데, 채식 위주 그룹과 육식 위주 그룹의 건강 상태 변화(피부병, 혈압, 치매 등)를 추적해 발표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
곽선희: 살처분 현장의 농장을 다녀온 동물권 운동가 5분이 촬영한 영상을 가지고 하동을 찾아왔다. 하얀 소독제가 뿌려진 텅 빈 축사, 죽음이 지나간 자리의 싸늘한 기운과 학살이 임박한 동물들의 비명들. 직접 보이지 않아 더욱더 폭력과 죽음의 두려움을 떠 올리게 하는 그런 영상들이었다. 현재의 축산업은 살처분 문제뿐만 아니라 사육, 도축, 생태계농장 근로자(대부분 이주노동자) 등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가장 빠르겠지만 작은 실천으로 육식을 줄이는 것 또한 살처분을 축소하는 한 방법이 될 거라 본다.
김난영: 영상은 보기 두려웠던 실제 살처분 현장을 직접 담지는 않았지만 텅 빈 거대한 축사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날 것 그대로의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보는 듯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내가 눈을 감고 피해도 잔혹한 현실은 진행되고 있고, 다수가 회피하는 그 현실을 두 눈으로 기록하는 용감한 사람들이 보여주고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와 생각에 동참하는 것이 그들을 돕는 일이고 스스로의 무력감과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일이다. 살처분이라는 잔혹한 방식을 막자고 옛날 방식의 사육으로 돌아간다는 건 될 수도 없지만, 적어도 예전 우리네 식습관을 한 번쯤 돌아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는 듣고, 보고, 의견을 나누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은동: 동물권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주제다. 식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여서 그렇다.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하지만 동물권 문제를 건너뛰고 다른 문제로 넘어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 페미니즘, 인권, 노동권 등의 문제와 깊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공무원이나 군인이 대규모 살처분에 동원되었지만, 이제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 일이 맡겨진다고 한다. 이제 이 어둡고 외면하고만 싶은 이야기를 자꾸 꺼내 진짜 이야기를 할 때다. 대안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프지만, 한숨과 짜증, 그리고 우리를 숨쉬게 하는 유머를 나누는 이런 모임이야말로 그 자체로 소중한 대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주옥: 돼지는 20년에서 30년을 살 수 있는데 현실 수명은 6개월이다. 6개월 되면 도살되니까.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6개월도 채 못 살고 죽는다. 오로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수의 동물이 인공적으로 태어나고 맛있는 존재로 사육되고 또 죽임을 당하고 있다. 대체로 이런 실상들은 가려져 있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먹으려 하는 이 고기가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내 앞에 와 있는지 누구나 쉽고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며,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맛있게만 먹고 있는 그 가축의 일생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려 할 때, 내 몸을 위한 건강하고 제대로 된, 필요한 만큼의 먹거리로 새롭게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란 없을진대 그래야만 그들의 죽음에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출 수 있는 게 아닐까?
최지한: 거대한 굴삭기가 울부짖는 돼지들을 구덩이로 밀어 넣는 장면과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람을 따라 구덩이 속으로 뒤뚱뒤뚱 걸어가는 오리들.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감상적으로 그려진 것들이 살처분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올려지는 이미지였다. 누군가의 삶을 ‘처분’한다는 것, 삶을 ‘처분’하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된다’는 것, 그런 삶들을 모르거나 외면해야 했던 삶이 ‘있다’는 것.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거짓과 모순은 그렇게 삶을 존엄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처분’되는 ‘삶’이 ‘있다’.
인간에 의해 새끼를 낳도록 정해진 여성 돼지들이 지내야 하는 시설의 모습이다. 각 틀에 여성 돼지가 한 명씩 갇힌다. 새끼가 깔리지 않게 하기 위해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기사
연도 / 호수
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