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금남면 주민
가끔 ‘GNP와 GDP의 차이가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는다. ‘GRDP는 또 뭔가?’란 질문도 받는다.그래서 이 개념들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의미내지 무의미성을 찾아보자.
우선 GNP란 Gross National Product의 약자로,‘국민총생산’이다. ‘한국 국적’을 가진 개인, 기업, 정부가 한 해 동안 생산한 모든 상품(최종 생산물) 가격의 합이다. 그래서 원료나 중간재 가격은 포함되지 않는다. 모든 상품이나,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반 물품은 물론 서비스 상품이나 금융 상품의 최종 가격도 GNP에 포함된다. 그리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생산되었다면 그 생산장소가 국내이건 해외이건 관계없다. 일례로, 한국인이 중국에서 생산한 휴대폰의 최종 시장 가격은 한국 GNP에 포함된다.
다음으로 GDP란 Gross Domestic Product의 약자로, ‘국내총생산’이다. 이는 199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이후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세계화 시대엔 국적이 그리 중요하진 않게 되었다는 뜻! 그래서 그 생산자(개인, 기업)가 어떤 국적을 가졌건, ‘한국 땅 안에서(domestic)’ 생산한 모든 상품(최종 생산물) 가격의 합이 GDP다. 여기에도 원료나 중간재 가격은 불포함이다. GNP와 마찬가지로, 일반 물품은 물론 서비스 상품이나 금융 상품의 최종 가격도 GDP에 든다.
‘한국 내부’에서 생산되었다면 그 주체가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이라도 관계없다. 일례로, 프랑스 기업 르노가 한국에서 생산한 자동차의 최종 가격은 한국 GDP에 포함된다. 통상적으로 경제성장이란 GDP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이며, 성장률이란 전년도 GDP에 비해 당해 연도 GDP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보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그러했듯, 2019년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2020년에는 각국 성장률이 대개 ‘-’를 기록했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GDP가 더 중요하게 쓰인다면, 지방 자치 시대를 맞아 GRDP 개념이 많이 쓰인다. GRDP란 Gross Regional DomesticProduct 의 약자로, ‘지역(내)총생산’이다. 통계청에서는 서울, 부산 등 8개 특별시 내지 자치시,그리고 경기도, 강원도, 제주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등 9개 도별로 ‘지역(내)총생산’ 규모를 집계, 공시한다.
나라 전체의 성장률처럼 GRDP 성장률도 있는데, 이것은 전년도 GRDP에 비해 이번 연도 GRDP가 얼마나 증가했는지 퍼센트로 나타내는 것이다. 만일 최근 울산이나 전남처럼 생산 규모가 그 이전보다 줄었다면 성장률은 ‘-’로 표시된다.
이 GNP, GDP, GRDP 개념을 볼 때 주의할 점이있다. 그것은 이 개념들이 포함해야 할 것을 포함하지 않기도 하고, 포함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많아서, 참된 경제 지표로서 그렇게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산과 강, 들과 바다를 오염시키면서 해외 수출을 많이 하면 GDP나 GNP는 증가하지만, 세상은 망가진다. 또, 그렇게 생산을 많이 하려고 일하다가 사람들이 다쳐서 병원비가 많이 나올수록 GDP나 GNP는 올라간다.
반대로, 이웃 간에 두레나 품앗이로 협동하면서 사는 공동체의 경우, 시장 가격으로 나타나는 상품이 없기 때문에 GNP나 GDP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통계청 인구분류 중에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주부, 학생, 군인 등은 사실상 하는 일이 굉장히 많은데도 “비경제활동인구”라 불릴 뿐 아니라 그들이 하는 유익한 활동조차 GNP나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걸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GNP나 GDP, GRDP가 올라간다고 환호할 필요도, 또 그게 다른 나라나 지역에 비해 낮다고 해서 한탄할 필요도 없다. (일례로, 부탄은 한국보다 훨씬 가난하지만 더 행복하다. 우리는 60년 전보다 평균 400배 부자가 되었지만 해피니스보다 스트레스가 더 증가했다.)
흔히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GNP나 GDP, GRDP를 올린답시고 논밭을 허물거나 산과 강, 바다를 파괴하는 ‘범죄’를 예사로 행하는데, 사람들은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고 그저 박수만 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죽는 줄 모르고 춤추는 꼴이다.
바로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GNP나 GDP, GRDP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이 무의미한 숫자놀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삶의질(QOL)’ 같은 다른 지표들을 개발해야 한다. 사람의 행복(좋은 삶)엔 돈이 아니라 관계가 핵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