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농민과 소비자를 살리는 후보를 뽑아야
설 명절을 앞두고 치솟았던 과일, 채소류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내릴 줄 모르고 있다. 정부의 뚜렷한 대책도 없다. 도시 소비자들은 과일,채소를 선뜻 사지 못하고 있다. 높은 물가에 아우성이다. 농산물 값이 오르면 농민들은 수입이 좋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힘들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생산량은 줄고 가격은 오르고, 신선식품 2023년 동월 대비 상승률 20% 폭등
지난 3월 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2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 물가는 2023년 2월에 비해 3.1% 올랐다. 2023년 1년 내내 3~4%의 상승이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신선식품의 상승률을 살펴보면 심상치 않다. 신선식품은 2023년 9월까지는 전년 같은 달 대비 2~10% 상승률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10월에 13.3%로 오르더니 그 이후 꾸준히 올라 2024년 2월에는 무려 20%로 폭등했다. 과실은 40.6%가 올랐다. 품목별로 보면 귤 78.1%, 사과 71%,배 61.1%, 토마토 56.3%, 딸기 23.3%가 상승하여 상상을 초월했다.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공급이 모자란다는 뜻이다. 통계청의 ‘2023년 가을배추·무·콩·사과·배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과 생산량은 전년보다 30.3% 줄고, 배는 26.8% 감소했다. 가격이 폭등한 품목들은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23년 9월 가을장마에 과실 수확이 줄고 2024년 2월 겨울장마에 시설 재배 채소류 확 줄어
농산물 생산량은 갑자기 왜 줄었을까? 이유는 기후변화다. 2023년 봄, 꽃필 무렵 이상저온으로 냉해를 입었다. 하동에선 고사리, 매실, 배, 대봉감과 단감 등 과실과 채소류가 냉해 피해를 크게 입었다. 게다가 1년 내내 비가 수없이 내렸고, 9월엔 가을 장맛비가 와서 수확을 앞둔 과일들이 큰 피해를 봤다.
악양면의 대봉감은 평년 수확량의 20%에 지나지 않았다. 대봉감과 단감은 ‘자연재해’로 인정되어 국가의 지원금까지 있었다. 하동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상기온으로 생산량이 급감했다.
게다가 올해 2월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진주시 기준으로 볼 때 관측사상 최대의 비가 내렸고,비가 내린 날도 15일이었다. 한 달의 절반 정도가 비가 내린 것이다. (
많은 비가 내린 2월. 난생 처음이야! 큰일이야! 기사 참조)
이로 인해 일조량이 40% 이상 감소하여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고, 생산량은 급감했다.겨울에 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가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애호박 경매 가격은 예년에 비해 50% 정도 올랐어요. 그런데 수확량이 절반으로 떨어져서 전체로는 수입이 예년만 못해요. 생산물량이 적으니까. 게다가 기름값, 비료값, 인건비가 올라서 재미가 없어요. 경매가격이 좋아서 돈을 벌 거 같은데, 더 줄었어요.”(하동읍에서 애호박 농사짓는 J씨, 55세)
겨울장맛비로 일조량이 턱없이 모자라 호박 줄기와 잎에 병이 들었고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양상추값은 작년보다 20% 정도 올랐어요. 생산 개수는 10% 정도 줄었어요. 그런데 크기가 잘아요. 안 커요. 햇빛을 못 보니까.”(하동읍목도에서 양상추 하우스 농사짓는 K씨, 60세)
정부 지원금 축소, 농자재비 상승, 기후변화. 3중 악재 겹쳐 농민들 쩔쩔매
생산량이 반으로 줄면 가격은 두 배가 돼야 손해가 없다. 그런데 두 배가 아니라 1.5배 정도이니 매출액이 작년보다 적다. 반면 생산비는크게 증가했다. 겨울 농사 난방유로 쓰는 면세 등유값은 3월 20일 현재 휘발유나 경유보다 비싸다. 일꾼들 인건비도 작년에 오른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하우스 농사는 기름값과 일꾼 인건비만 따져도 매출액의 30%가 넘는다.
급등한 비료, 기름, 전기값을 보전해주던 정부지원금이 대폭 삭감되거나 폐지되어 농자재비 상승률은 가파르다.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해마다 비료값 지원으로 1000억 원을 썼으나 2024년에는 겨우 288억 원을 지원한다. 71%가 줄었다. 그 결과 거의 대부분의 비료를 지원금 없이 사야 하는데 상승률이 약 40%이다. 농업용 면세유 인상 차액 지원사업도 국회에서 약 653억 원을 요구했지만 최종 결정은 70억 원에 그쳤다. 농사용 전기요금 인상 차액 보전은 519억 원을 요청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 축소, 인건비와 농자재비 인상,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의 대폭감소라는 3중의 악재가 겹치면서 농민들은 죽어난다. 대봉감이나 배 수확량이 절반에도 못 미쳐서 소득이 크게 줄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하동의 영세농 농업소득이 월 80여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가을 소득이 없어진 과수 농가들은 쩔쩔매고 있다. 원예 시설 농가들은 겨울 장맛비 후유증에 속수무책이다.
더 큰 문제는 농산물값은 높고, 농민들 수익은 줄어든 이 상황이 3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되고, 해마다 더 악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 3월 15일 인천농산물경매사 L씨의 말이다.
“하우스 생산 농가는 거의 줄지 않았는데 수확량은 30% 이상 뚝 떨어진 것 같아요. 품질도 예년만 못해요. 3월부터는 낙찰된 농산물이 단체급식 납품으로 많이 들어가요, 공급이 달리죠. 노지 과채류가 나올 때까지는 가격이 높을 거고, 사과 배 등 작년 과일은 수확이 없는 상태니 떨어질 리가 없죠. 소비자들은 고물가에 계속 시달릴 거예요. 다음 시즌부터는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많을 것 같고, 기후변화는 더 심해질 것 같으니 걱정이에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도 3월 이후에는 기상여건이 개선되고 출하지역도 확대되어 농산물 수급 상황이 2월보다 나아질 것이나, 사과·배의 경우에는 햇과일 출하 전까지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동 전통시장 과일판매 가게
정부의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물가 대책 시급하다 농산물유통방식 개선을 위한 사회 공론화 필요
소비자와 농민이 고물가와 매출액 감소에 시달리는 지금, 정부의 대책은 무엇일까? 지난 3월 6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3~4월 농·축·수산물 할인지원에 6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수입 과일 3종(만다린,두리안, 파인애플)에 대한 추가 관세 인하와 오렌지, 바나나 등 주요 과일을 직수입하여 저렴하게 공급하고, 석유류 불법·편승 인상이 없도록 매주 전국 주유소를 점검하는 등 각 부처가 함께 ‘물가 안정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할인지원금 600억 원투입 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
외국 과일을 수입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수입해도 사과, 배 등 국산 과일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유소를 점검한다고 유가 상승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분위기’ 확산에 지나지 않는다. 할인지원금 600억 원도 땜질식 처방이다. 할인지원금이가격을 낮출 수 있을진 몰라도 공급을 늘릴 수는 없다. 결국 노지채소가 나오고, 참외와 같은 대체 과일이 나오는 5월까지는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고, 사과와 배는 햇과일이 나오는 8월이 돼서야 잡힐 것이다.
기후변화가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고, 농업 인구는 줄어들어 농산물 생산량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공급이 안정되지 않으면 물가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농민들의 농산물가격을 보장하고, 전국 생산량을 추적 관리하며, 복잡한 유통단계를 개선해야 농민도 살고 소비자도 산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해야 농민도 살고 소비자도 산다
22대 국회의원 선거, 농민의 입장에서 후보 공약 제대로 따져보고 투표해야
농수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는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고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지자체들도 있다.
전북도는 2016년부터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실시하여 농산물 시장가격이 기준가격보다 하락했을 경우 ‘주요농산물 가격안정운영심의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차액의 90%를 보전한다. 2023년 최저가격 보장 품목을 마늘, 가을무로 결정하고 출하한 농업인 89농가에 4억 4500만 원을 지원했다.
전북 고창군은 2023년 ‘농산물최저가격 보장 조례’를 제정하여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총 3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최저가격을 제도적으로 보전해 주기로 했다. 2023년 지원대상 품목은 고구마, 수박, 배, 배추, 고추, 양파, 무 등 총 7개 품목으로 결정하여 기금으로 지원한다.
국회에서 ‘농수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위한 입법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 2월 1일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양곡법)과 그 후속법인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농안법) 등을 의결했다. 양곡법은 윤석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첫 법안이다. 농안법은 농산물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여당과 정부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는 상태이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 10일이 코앞이다. 하동은 농민이 압도적 다수인 농촌사회인만큼 하동 국회의원은 농민의 생존에 앞장서야 한다. 표류하고 있는 양곡법과 농안법이 21대국회 마감과 동시에 자동 폐기된다면 22대 국회에서 재상정하고 입법 절차를 밟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후보들의 농민, 농업정책이 어떤지 자세히 꼼꼼히 살펴야 한다. 물가폭등을 막고 농민과 농업을 살리는 길이 이번 투표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