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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입장

넓고 푸른 바다 위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떠있다. 잠시 후 롱숏으로 찍은 다음 장면이 이어진다. 자세히 보면 줄에 단단히 묶인 나무는 바지선 위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뿌리 없는 정원>의 첫 장면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크고 오래된 나무를 수집하는 한 부자가 있다. 그는 사람들을 고용해 마을이나 숲에서 큰 나무를 사들여 육로와 해로를 통해 그의 개인 정원으로 가져간다. 그가 이번에는 조지아 해안 마을 곳곳에서 오랜 세월 자생하고 있는 울창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을 샀다. 거대한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는 지난한 과정에서 나무와 마을 공동체는 엉망이 된다.
하동군에서 군청 내 군민 정원을 만들기 위해 수목 자원을 조사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2년 전에 본 다큐멘터리 <뿌리 없는 정원>이 떠올랐다. 나무를 수집하는 주체와 목적이 다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돈과 권력이라는 점에선 두 정원은 닮았다. 군청 공고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 나무는 “보호할 만하고 경관적 가치가 있으며, 하동의 정체성을 담고, 지역의 대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수목”이다. 간단히 말해 크고 아름다운 나무다. 물론 하동군 담당자는 그런 수목이 확보된다 해도 굴취 조건에 적합하지 않다면,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가령 큰 나무를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도로 접근성 등의 주변 조건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오랜 세월 나무와 함께 만들어진 공동체의 정서도 꼭 챙기겠다고 했다. 나무의 식재 환경, 관련된 사람들의 입장 등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하므로, 큰 나무를 캐내 옮기는 일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반면 굴취 조건과 공동체 정서에 무리가 없다면, 큰 나무를 옮기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듯싶다.
그런데 정작 나무의 입장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가지를 높이 멀리 뻗고,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며 살았을 나무의 입장은? 그렇게 자란 가지와 뿌리가 이동을 위해 무참히 잘려와 낯선 환경에 살아야하는 나무의 입장은? 현재 군청 내에서 그 공간과 함께 어우러져 멋지게 자라고 있지만, 다시뽑혀 어디론가 또 이동될 소나무들의 입장은?
지자체마다 정원 만들기에 열심인 것 같다. ‘생태’, ‘환경 친화’, ‘자연 친화’ 등 멋진 슬로건으로 치장된 정원만들기 사업에 지역민들도 거부감이 없는 분위기다. 물론 내가 사는 지역에 녹지 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자연스러운 녹지가 충분한 하동 같은 지역에, 또 나무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그런 공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필요하고 또 부자연스럽다.
<뿌리 없는 정원>은 나무수집가 부자의 개인정원을 오랫동안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난다. 그곳에선 숙련된 정원사들이 잔디를 매끈하게 관리하고, 수많은 스프링클러가 나무에 물을 공급한다. 조지아 해안 마을에서 뽑혀온 나무도 아마 그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만을 수집해 가꾼 정원은 꿈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괴해 보였다. 나무들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하동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군민정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부디 쓸데없는 걱정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