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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공공 건물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었지만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는 공공 건물이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각종 공모사업과 지원사업으로 계속해서 건물들은 새로 지어지고 있다. 누가 어떻게 쓰고 관리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공모와 지원을 통해 이루어진 사업이다 보니 제대로 활용이 안 되어도 용도변경이 어려워 다른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되기 일쑤다. 에버딘대학교 기숙사와 이화스마트 복합쉼터를 살펴보았다.
금성면 가덕리 1488-1에 위치한 에버딘대학교 기숙사 건물. 학생 숙소 30실, 교원 숙소 12실, 휴게실, 식당, 독서실 등의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91억 들여 지은 기숙사, 활용방안 못 찾고 매년 유지관리비만...

2021년에 나라살림연구소는 ‘참 나쁜 예산’의 사례로 에버딘대학교 기숙사를 다루며 <400년된 영국 대학이 한국에 남긴 유령기숙사>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김유리 책임연구원은 “2013년 3월, 하동군은 MOU를 체결하며 영국 유명대학교의 한국캠퍼스 유치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용도를 잃은 80억 원짜리 건물 하나와 매몰비용이 되어버린 투자비, 에버딘대 상대 법정소송비용, 그리고 우롱당한 군민만 남았다.”고 평가했다.
2015년 952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학교 본관동과 실험동이 준공되고, 2016년에 12억 원의 준비비와 79억 원의 건설비를 들여 5층 규모, 72명이 수용 가능한 기숙사 건물도 준공되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2016년 9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개교가 미뤄지더니 2018년에 결국 개교가 취소되었다. 에버딘대학교 측은 ‘조선업경기 침체로 인한 학생 모집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다.
세계적인 해양플랜트 인력 공급의 중심이 되겠다는 장밋빛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은 건물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본관동과 실험동은 원래 목적인 해양플랜트 종합시험연구원으로 부산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기숙사 건물이다. 2021년까지 매년 운영 및 관리비로 1억~1억 4000만 원이 들어갔고, 2022년에는 9000여만 원, 2023년에는 6500여만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영어체험마을, 세미나와 학술대회 유치 등을 통해 기숙사의 활용방안을 모색하려 하였으나 이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은 극히 미미했다. 일례로 2019년에는 산업안전보건교육원에서 일주일 간 사용하며 77만 원을 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2021년에 GNEEV라는 영어교육 전문업체가 위탁 운영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2년간 연간 1억 2천만 원의 위탁료를 4회에 걸쳐 분납하는 형태로 계약을 했다. 그러나 1차분 납부 후 체납을 계속하여, 급기야 2022년 1월에 계약을 해지하기에 이르렀다. 계약 해지 후에도 건물을 나가지 않고 무단으로 점유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소송 중에 있다.
2024년 6월 18일 행정사무감사에서 하동군 투자유치과는 “지난 위탁 관리의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하면서 산단 입주기업 임직원이 착공 시부터 숙소로 우선 활용하는 방안을 기업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률 20%인 채로 20년째 답보 상태인 갈사산단은 말할 것도 없고 반쪽짜리 준공을 해야 하는 대송산단 어디에도 새로 들어오겠다는 기업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기업들과 기숙사 우선 활용을 협의하고 있다는 것일까? 교육연구 기관이나 산단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도록 되어 있는 제한 조건을 풀지 않는한, 매년 수천만 원의 유지보수비가 들어가는 기숙사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국도 19호선 인근 화심리에 위치한 이화스마트 복합쉼터 전경. 알프스 푸드마켓, 하동커피, VR체험관, 화장실, 광장이 들어서 있으나 대부분의 건물이 운영중단 상태다.

지역발전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던 스마트 복합쉼터, 2년만에 풀만 무성

2022년 5월 10일, 국도 19호선 인근인 하동읍 화심리 1684-11에 국내 1호 스마트 복합쉼터가 문을 열었다. 스마트 복합쉼터는 기존의 졸음 쉼터에 문화체험·경관조망 등 지역 자원을 연계해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편의시설로, 국토교통부와 지자체의 협력 사업이다. 국비 20억, 군비 19억으로 총 사업비 39억 원을 들여 홍보관, 카페, AR·VR체험센터, 전기차충전소, 주차장, 화장실, 문화광장 등을 지었다. 국토교통부와 하동군은 이화스마트 복합쉼터가 “섬진강과 주변 배밭의 경관이 어우러져 남해안권 관광의 관문 역할을 하며 일자리 창출을 하는 등 지역발전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었다. 하동군 건설교통과는 민간위탁을 통해 카페 운영을 맡기고 안마의자 등 편의시설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2023년 12월부터 카페는 영업을 중단했다. 건설과 담당자에 따르면 적자 운영의 문제를 포함, 업자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화스마트 복합쉼터는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도로에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한 군데 뿐이고, 그나마 화장실 근처로는 차량의 진입이 어려워 접근성이 떨어진다. 밤에는 어디가 주차장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굳게 잠겨 있는 시설물들, 풀이 무성하여 주차선이 다 가려져버린 주차장, 이화스마트 복합쉼터는 쉼터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방치되고 있다.

공공 유휴시설 규모 파악, 원인 분석 통해 새로운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더욱 큰 문제는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동 관내에 공공 건물들 중 방치되고 있는 유휴시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왜 그렇게 방치되기에 이르렀는지 명확한 원인 분석도 해야 한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쓸모를 다한 것인지,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었는지 되돌아보고 진단해야 한다. 민간위탁의 방식이 건물 관리나 세수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되새기며, 유휴시설들을 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주민들과 머리 맞대고 찾아야 한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