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임금체불뿐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에 비해 3배 많이 다치고 7배까지 많이 죽는다
하동군 A인력사무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력사무소 대표의 해결의지가 결여된 무성의한 태도, 미등록(불법체류) 노동자라는 신분상의 한계로 인한 피해자들의 소극적인 대응, 고용노동부·하동군청 등 주무관청의 무관심 속에서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절박한 생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에는 이주노동자에게 가혹한 한국사회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산재 피해·사망 사고 등, 이주노동자에게 집중돼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의 리튬전지 생산업체인 아리셀 공장 화재에서 사망한 노동자 23명 중 18명(78%)이 이주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노동자에게 집중되는 산재 피해는 아리셀 공장에서 나타난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이주노동자 수는 52만 2500명으로 전체 취업자 대비 약 3%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는 8286명으로 전체 피해자 130,348명의 6.35%를 차지한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산재 피해율은 1.58‱로 한국인 노동자(0.53‱)의 약 3배에 달한다.
이주노동자의 산재사고 발생률과 사망률이 한국인에 비해 3~7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출처 : 고용노동부·국가통계포털 자료)
산재사고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2020~24년 산재 사망자 통계를 보면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 중 평균 10.8%가 이주노동자이다. 이 기간 중 산재로 사망했던 노동자 10명 중 1명 이상이 이주노동자인 것이다. 전체 노동자가 10명이라고 할 때 이주노동자는 0.3명(3%)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사망률이다. 2021년에는 이주노동자 산재사고 사망률이 전체 노동자의 사망률의 약 7배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런 통계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3D(Difficult:어렵고/Dirty:더럽고/Dangerous:위험한) 업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를 한국사회가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임금체불 문제 또한 심각, 이주노동자 10명 중 9명이 임금체불 경험해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이주노동자(미등록 체류자 포함) 임금체불 현황’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은 매년 증가 추세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법적 보호망 밖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 문제가 발생해도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22년 한국행정연구원이 이주노동자 5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고용 실태조사 결과, 42.9%의 미등록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사업주에 항의 후 지급까지 기다리기’를 선택했다.
심지어 조사 대상자 중 16.5%는 고용센터, 소송 등의 제도 이용을 꺼리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 중인 상황을 역신고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자신의 신분으로는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동 A인력사무소의 이주노동자들이 자력구제에 나서지 못하고 시민단체의 조력조차 꺼리는 이유와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다.
“이주노동자를 전담하는 ‘특별근로감독기구’ 혹은 ‘국제 이주민 전담부서’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 특히 미등록 노동자는 제도의 미비와 공공기관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임금체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주민 인권센터 등의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양하다.
첫째, 체불임금이 확인될 때 사업주에게 부과하는 벌금에 체불임금까지 덧붙여 징수하여 체불임금을 해결하는 방안, 둘째, 임금채권법에 규정된 ‘임금채권 보장기금’으로 체불임금을 선지불한 후 사업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안, 셋째, 외국인 근로자고용법에 규정된 ‘임금체불 보증보험제도’를 확대(현행 400만원 한도의 폐지)하는 방안, 넷째, 국가기관이 나서 이주노동자들의 민사소송을 대행해 주거나 소액 소송의 경우 피고인을 병합하는 공동소송을 인정하여 번거로운 법률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들 방안은 모두 법률 개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긴급한 현실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2004년부터 전국 44개소에서 운영되던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국회마저 이에 동의했다. 그나마 이주노동자에게 도움을 주던 공공기관조차 20년만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임금체불이나 산재 관련 분쟁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생계유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안과 “이주노동자들을 전담하는 ‘특별근로감독기구’ 혹은 ‘외국인 이주민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방안이다.
지금처럼 이주노동자나 다른 이주민들이 겪는 온갖 어려움을 방치하는 것은 소위 “헬조선”의 가장 극악한 측면을 이주민들에게 강제하고 전가하는 반인권적 행위이다. 이제라도 법률 개정 등의 절차 없이 즉각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하동군청이 이제라도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주노동자(고용노동부)뿐 아니라 결혼이주민과 그 자녀(가족센터), 계절근로자(농업기술센터) 등으로 분산된 행정력을 총괄하여 전반적인 상담, 조력, 문제해결을 제공하는 기구나 인력을 마련하기를 기대해 본다.
외면해선 안 되는 고통을 겪는 이들이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