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vs 반대”가 아니라 “조속 추진 vs 정상 추진”의 갈등이다
보건의료원 건립을 둘러싸고 하동군청과 군의회 사이에 논란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4월 26일 하승철 군수는 군의회가 보건의료원 설립에 “반대”하여 설계비 예산을 삭감했다고 주장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이에 하동군의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는 공공의료원 건립을 반대하지 않았다.”며 “하동군수는 불통”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관내 곳곳에 군의회의 결정을 비난하며 보건의료원 건립을 촉구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이장들이 ‘하동군 보건의료원 조속 건립 탄원서’에 마을주민들의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하동군 “설계비 삭감은 군의회의 부당한 딴지걸기”
하동군 보건의료원은 하승철 군수의 공약사업으로 지하 1층·지상 3층에 내과, 외과, 신경과 등 10개 과에 50병상 규모로 4명의 전문의와 12명의 공중보건의, 19명의 간호인력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2026년 완공되면 360억의 건설비와 연간 60억의 운영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사업이다. 하동군청은 하승철 군수 당선 후 1년 6개월 동안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심도 있는 전문용역”을 실시했고, “군의회와 소통을 위해 다각적인 경로로 보건의료원 설립의 타당성을 설명”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하동군 의회가 4월 25일 진행된 추경 예산안 심사에서 13억여 원의 건축설계비를 전액 삭감하자, “의회의 일방적인 반대가 행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난하며 군수가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하동군의회 “의료진 확보 계획, 전체 예산의 의회 승인도 없이 의료원 건립만을 강행”
이에 반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군의원들은 “3월 기획행정위의 회의 당시 공공의료를 반대한다는 발언을 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며 “하 군수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의원들은 질의를 통해 “보건의료원의 건립 예산 확보 계획과 이후 운영예산에 대한 적자 추계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전체 예산에 대한 심사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 일부인 설계비만을 심사 요청”한 것이 절차상 부적절함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의, 공중보건의 등의 “의료진 확보에 대한 계획조차 부실하여 자칫 의료진 없이 병원 건물만 들어설 것이 우려”되므로 부실한 예산 심사 요구안에 대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소속 군의원이 다수를 이루고 있음에도 군의회에서 예산 전액삭감이 결정된 점이나, 군청에서도 보건의료원 예상 적자를 연간 25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중하고 엄격한 예산 심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사회 “하동형 공공의료를 모색할 필요성, 주민들의 목소리가 중요해”
보건의료원 건립을 둘러싼 군청과 군의회의 갈등 속에 5월 3일 하동참여자치연대와 민주당이 주최한 ‘하동 보건의료원 설립 관련 군민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발제자로 참석한 정기현 (전)국립의료원장은 “심각한 의료취약지역인 하동군에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나, 기존의 보건의료원 모델을 따르기보다 “기존에 없던 모형을 제시할 수 있는 선도적인 하동형 공공의료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미 운영 중인 여러 지역의 보건의료원이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기존 모델을 따라 보건의료원을 건립하기보다 “지역 생활권 내에서 주민의 의료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의료-돌봄-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센터 기능을 감당하는 보건의료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원별 병상 가동률 (출처 : 하동군 보건소 제공)
현실적으로 중증응급, 심뇌혈관질환, 암 치료 등 3차 의료 영역은 진주시 등 인근 대도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고령자, 장애인, 복합만성질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하동의 현실에서, 새로 건립할 보건의료원은 외래/입원 진료 등 2차 의료 서비스를 넘어 재택의료, 방문간호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최지한 하동참여자치연대 대표와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사천·남해·하동지역위원회 위원장도 “하동의 공공의료 체계는 보건의료원 증축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당장 시급한 과제인 “응급실 운영, 응급이송 시스템 구축부터 시작해 지역 내 돌봄 기관, 복지 기관들과의 연계와 참여를 통해 하동형 보건의료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공감을 표했다.
심도 깊은 토론과 공론화의 필요성
하동의 의료공백을 공공의료체계 구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이미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쳤으므로 보건의료원 건립을 ‘조속 추진’하자는 입장과 기존의 보건의료원이 가진 한계를 거울로 삼아 좀 더 충실한 계획수립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제대로 된 보건의료원을 설립하자는 ‘정상 추진’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하승철 군수가 군의회의 예산삭감을 보건의료원 건립에 대한 “반대”로 규정짓고 1인 시위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협력하여 하동의 지역 현실에 최적화된 맞춤형 보건의료원을 건립할 방안을 마련하여 군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5월 초순 하 군수와 군의원들이 간담회 형식으로 소통의 자리를 가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런 소통의 자리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면피용 자리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군민에게 제시하는 자리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