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아늑히 펼쳐져 있는 금남면 진구지 마을 앞에는 돌섬, 장장목도, 무섬, 수령도, 모자섬이 다정하게 이웃하고 있다.
진구지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진구지 마을은 섬 주변으로 해 뜨는 모습이 장관이다.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바닷길도 열린다. 주민들은 이때 바닷길로 나가 조개 같은 해산물을 채취한다. 진구지 주민은 무엇보다 멸치를 많이 잡는다.
정금희, 최준식 부부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는 재래식 방법으로 멸치를 데치고 있다. 보조금을 받아 다른이들이 하는 개선된 설비를 갖추고 싶다고 말한다.
국민 생선 멸치가 하동에서도 잡힌다는 걸 아는 하동 주민은 많지 않다. 멸치는 뼈째 먹는 생선으로 칼슘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모든 찌개에 감칠맛을 내는 육수를 내는 데 없으면 안 되는,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생선이다. 금남면 진구지 마을에서 잡는 멸치는 한번 맛보면, 저절로손이 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절로 노래를 흥얼대게 하는 맛이다.
하동 멸치가 맛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노량과 소금기가 없는 섬진강이 만나는 곳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짜지않다. 그리고 마을에서 10분 정도 가까운 거리에서 잡아 바로 뜨거운 물에 데친 것을 햇볕에 후딱 말리므로, 아직 살아있는 듯 말랑한 부드러움이 비결이다. 이런저런 설명이 필요 없는, 한번 먹어보면 잊을 수 없는, 먹어봐야 맛을 아는, 기어이 다시 찾고야 마는 그 이름 ‘하동 진구지 멸치’다.
진구지 마을에서 멸치를 잡고 있는 김덕곤(78), 하기석(68), 정영달(64), 김점식(61), 최준식 씨(51)는 입을 모아 멸치잡이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이들이 멸치잡이에 사용하는 방법은 낭장망이다. 부부가 함께 배를 타고 10분 거리 앞바다로 나가 쳐 놓은 그물에 들어온 멸치를 뜰채로 걷어 온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부부가 한 조가 되어야만 할 수 있기에 부부 사이에 금슬이 나쁜 집은 없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근처의 바다를 매립한 후 멸치는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앞길과 주위 방파제까지 꽉 차도록 말렸던 멸치는 이제 도로 한쪽에 설치한 말림틀을 겨우 채우거나 못 채울 때가 많다. 그야말로 배 기름값도 안 나올 때가 태반이다. 예전에는 도로에 그대로 펼쳐 말렸는데 지금은 차들이 다녀 말림틀 위에서 햇볕에 직접 말린다. 그물에 쓰레기가 예전보다 더 많이 걸려 나오는 것도 큰 근심거리 중 하나다.
군 행정이 일부 면에만 특혜를 주고, 특정 사업에만 쏠려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진구지 주민은 불만을 토로한다. 마을 앞길 얼마 길지도 않은데 멸치 말리는 곳에 아스콘을 깔아주면 먼지가 덜 날려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멸치 외에도 진구지 마을은 특산품이 많다. 산딸기, 오디, 키위, 블루베리 등을 출하하는데 일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옥종 딸기가 끝날 즈음 멸치를 잡고 작물을 거두기 때문에 옥종의 노동력을 이 마을에도 제공해 주면 좋겠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희망이다.
마을 앞 모자섬으로 떠오르는 일출은 진구지 마을의 상징이 되어 새해 아침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기계로 크기 분류를 마친 멸치에 섞여 있는 청어와 꼴뚜기 등 잡어를 가리는 작업은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한다. 잡어를 분류하고 있는 귀농11년차 정금희 씨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이 남들 다 가는 대학을 안 가는 대신 농촌에 남아 일하겠다는데, 아들이 대견한 한편 걱정도 된다고 한다. 하동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하동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큰 일꾼이 되기를 함께 바란다. 또한, 바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매립 같은 일은 더 이상 없기를, 그래서 어민들이 자연의 혜택을 좀 더 많이 받아 풍어를 이루고 풍성한 나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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