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노랫말처럼“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시간은 잘도 흐른다. 그를 알고 교우한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다.
그사이 서로에게 가족이 만들어졌다. 가족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우리를 닮은 듯 닮지 않은 자식들이 태어났다. 선술집 어딘가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이슬을 걷어차며 집으로 돌아와도 나무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자식들.
아직도 책으로 만들어져도 제법 팔릴 것 같은 그와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손에 잡힐 듯 하다. 가장 치욕적인 순간에도 그는 나의 곁을 지키는 동내어귀 당산나무 같은 존재였다. 올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의과대학에 하나뿐인 자식이 합격했을 때도 그는 자기의 일처럼 함께 기뻐해주었다. 아직도 전화기 너머로 박꽃같이 터졌던 그의 웃음을 기억한다.
산행 내내 나는 묻고 그는 답한다. 이건 뭔 꽃이며 저건 무슨 나무냐고. 그때마다 식물도감을 읽어주는 듯한 식물에 대한 그의 지식에 여러 번 놀랐다. 걸어 다니는 나무위키 같았다.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를 아직도 모르는 나에게 그는 계룡산 도사 같은 존재다.
쇠물푸레, 보춘화, 졸방제비꽃, 각시붓꽃… 현란해서 어지럽다. 제길! 이런 것까지 부러워하면 안 되는데. 순간 그의 옆지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행복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미지의 식물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인간이 인간에게 닫아놓은 마음의 오지는 쉽게 열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식물에 대한 그의 지식은 자연에 대한 깊은 공감과 애정이 만들어낸 것이라 정리해본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진화하는 영장류다. 그에게서 진화하거나 퇴화되지 않은 것이 남아있다면 그 선한 눈매가 초승달로 변하고 장난끼가 일어나면 참외만한 주먹을 다른 한쪽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일루와~ 일루와~”할때다. 삼십 년 전 그 모습 그대로다. 웃음이 물린다.
하루가 지났다. 나는 농장으로 돌아왔고 그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유쾌한 산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더러는 우리의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소복 소복 눈이 쌓여 그가 지나간 발자국을 지우고 폭설에 연락이 두절된다 해도 깊어가는 세월의 강을 함께 건너는 우리를 돌아본다.
다시 한번 그와 함께 계곡을 타고 흐르던 산벚꽃 냄새 맡으며 그 산행 길 위에 돋아났던 산새소리 뻐꾸기소리 듣고 싶다.
하태승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하동에서 서식하고 있다.
아무생각 없는옆집 백구처럼 멍청하게 지리산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고 취미가 되어버렸다.
생업으로 담배포 만한 딸기농장에서 농사구력과 반비례해서
어려워지는 난이도 높은 이놈들과 하루하루 씨름하며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