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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윤리학과 사랑의 윤리학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금남면 주민
약 10년 전, <분노의 윤리학>이란 영화가 있었다. 분노와 윤리의 조합이라, 참 묘한 결합이다. 그러나 영화는 나름 좋은 메시지를 준다. 이 영화엔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지만,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이란 말처럼 평범한 자들이 저지르는 악행이 중심이다. 구체적으로 도청, 살인, 사채, 간음등, 매일 언론에서 볼 수 있는, ‘통상적’ 사건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어느 날 아리따운 여대생진아가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이 죽음을 둘러싼 주변인들은 평소에 상호 무관하고 나름 ‘평범’했지만, 이제 진아의 죽음을 계기로 운명 공동체처럼 서로 엮인다. 그 여대생의 옆집에 살면서 그녀를 도청하는 경찰(김정훈), 삼촌을자임하던 잔인한 사채업자(박명록), 끝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킹하며 괴롭히던 옛애인(한현수), 아내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던 대학교수(수택), 이 네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공통분모로 한 특수 공동체를 형성한다. 분노의 공동체!
이 공동체의 특성은 자기 내면의 분노를 직시하고 정면 대응하기보다 그 분노의 책임을 타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도청하던 경찰 정훈은 “남한테 피해 준 적 없어.” 라고 말하고, 잔인한 사채업자 명록은 “돈만 벌면 돼.” 라고 말한다. 스토킹하던 옛 애인 현수는 “사랑해서 그런 거야.” 라 하고,불륜을 저지른 교수 수택은 “아내만 모르면 돼.” 라 한다. 모두, 이기적 욕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기 삶에 대한 무책임성만 드러내는 이들은 일종의 ‘분노 경쟁’에 돌입한다. 마치 누가 최고로 악한지 시험하듯. 
이렇게 자신만은 순결하다고 억지를 쓰는 네 남자 앞에 또 다른 여인(선화)이 나타난다. 간통남 교수, 수택의 아내다. 그녀는 살인보다 불륜을 더참을 수 없다고 느끼는, 우아한 상류층이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것이 무엇보다 불쾌하기에 선화는 분노의 목소리로 외친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이는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해본적 없는 선화가 난생 처음 내뱉은 ‘싫은 소리!’ 네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중 과연 누가 가장 나쁜 자인가?
이 영화에서 내 기억에 가장 남는 대사는 사채업자 명록이 자동차를 타고 가며 기사에게 하는 말이다. “희노애락 중 분노가 가장 형님이다. 분노하는 자는 희·애·락을 못 느낀다. 희, 애, 락 하다가도 타인과 비교하거나 타인의 잘못이 발견되면 분노가 치솟는다. 그러니 분노가 제일 형이다. 분노만 잘 다스리면 된다.” 이 부분이다. 
이 말의 과학적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실은 타자를 향한 분노나 증오의 깊은 뿌리가 자기 내면의 ‘두려움’이라는 메커니즘만큼은 확실하다. 즉, 우리는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감내, 포옹, 극복하기보다 회피, 외면, 억압, 은폐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것이 곧잘 타자에 대한 분노나 증오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내면의 두려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틱낫한 스님의 <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청소년 비행, 분노의 뿌리는 가정, 부모가 자식대하는태도... 그 뿌리는 사회구조와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란 구절이다. 즉, 가정에서부터 ‘조건없는 사랑’을 듬뿍 받으면 삶에 대해 아무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생기지 않는다. 생겨도 곧잘이겨낸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사회적 관계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며 살 뿐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과 연대가 결핍된 사람들은 내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이를 메우기 위해 부단히 뭔가 축적하려 한다. 돈과 지위, 권력과 명예, 인기와 점수 등으로 그 공허함을 채우려한다. 그러나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원래의 공백인 사랑의 결핍을 다른 대체물로 채울순 없기 때문! 오늘날 온갖 중독물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 것도 바로이런 근본 뿌리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분노의 윤리학’ 보다 ‘연대의 윤리학’이 아닐까?

2024년 2월 /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