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면 노전 버스정류장. 그 앞으로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새 길이 완성되면, 이 정겨운 정류장도 곧 철거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5시간의 공백’이라 불렀다. 이제 그 공백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하동읍에 갈 때 가끔 버스를 탄다. 자가용이 있지만, 운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다. 가능하면 버스를 더 자주 타고 싶다. 내가 사는 마을은 하루 다섯 번 버스가 다닌다. 아침 8시 10분 차를 타면 8시 50분쯤 하동읍에 도착한다. 볼일을 보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집에 가는 9시 30분 버스는 탈 수가 없다. 다음은 오후 2시 20분 차다. 이것이 내가 앞서 말한 ‘5시간의 공백’이다.
밀린 일을 일부러 천천히 처리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럴 때는 하동읍, (구)터미널 부근에 있는 교통쉼터로 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르신들이 많이 앉아 계신다. 나도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남았다. 얼마 전에도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 나만큼이나 오래 앉아 계시는 옆자리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어디까지 가세요?” “중기 간다.” 중기는 내가 기다리는 버스의 종점이다. 나는 할머니의 늦둥이 딸뻘쯤 되겠지만, 우리는 공통화제를 두고 막힘없는 수다를 떨었다. “12시나 1시쯤, 집에 가는 버스가 응당 있어야 한다.”라는 것! 가능하면 버스를 ‘자주 타고 싶은’ 나의 ‘고민’과 바깥세상과 쉽고 간편하게 연결되는 버스를 ‘자주 탈 수 없는’ 할머니의‘고통’이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우리 둘은 분명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동군은 지난해 11월부터 농어촌버스 노선 개편에 대한 면별 주민설명회를 열었다.내가 사는 악양면은 2월 7일에 설명회가 있었다. 10년만의 버스노선 개편에 대한 주민관심도를 반영하듯 설명회 장소인 악양면사무소 2층은 주민들로 가득 찼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설명회를 들었다. 통학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을 고려한 배차시간 조정이 이번개편안의 중점사항이었다. 매일 버스를 타야 하는 학생들을 먼저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기마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불편 사항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개편안이 확정된다면 ‘5시간의 공백’은 ‘5시간 30분의 공백’으로 커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노선 개편 용역을 담당한 업체 측은 “하동군 측으로부터 지역별 주민 불편 사항을 충분히 전달받지 못했다.”라고 했고, 하동군 담당자는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되는 일이니,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양해를 부탁한다. 주민 의견은 참고하겠다.”라고 했다.
다행히 설명회 이후 주민 의견을 반영하여 버스노선 개편안이 일부 수정됐다. 중기마을근처의 경우, 주민들의 오랜 불편 사항이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수정안이 최종 확정되면 탑승객이 적은 하동발 새벽 6시 35분 버스가 없어지고 오후 1시 10분 버스가 신설된다. 증차 요구는 받들여지지 않았지만, ‘5시간의 공백’은 사라지게 된다. 반면 새벽에 버스를 이용하는 주민의 아쉬움은 클것이다. 다른 지역의 교통 사정은 더 심각하다. 양보면, 북천면, 옥종면 등은 농어촌버스운행 횟수가 턱없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아예 운행을 중단한 곳도 많다. 이번 버스노선개편으로 이들 지역 또한 불편함이 많이 개선되길 바라본다.
우리는 매일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단골 약국에 들러 약사와 수다를 떨고, 콩국수를 먹으러 간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다. 파마하러 미용실에 간다. ‘지금, 여기’의 평범한 일상이 중요하다.
*글 제목은 진은영 시인의 시집 제목인 “우리는 매일매일”을 차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