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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노스탤지어

최성훈

악양에서 도자기 공방 노전요(蘆田窯)를 운영하는 젊은 작가
10여 년 전 도자기를 처음 배웠을 때 생각했다. ‘전시회라는 건 참 멀게 느껴지는군...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하동을 떠나 밀양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구부정한 선생님이 담배 한 대 태우며 반겨줬다. (사실 썩 반겨주지는 않았으리라.) 처음 맛보는 드립 커피만큼 놀라웠던 것은 선생님이 만든 도자기였는데, 뚜렷한 색으로 이리 저리 칠하니 꼭 그림 같더라. 도자기를 배울 때 선생님이 자주 하셨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재미있게 해라.” 이 말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말 중 하나일 것이다.
그 후로 시간은 흘러, 밀양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하동으로 돌아와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밀양에서의 기억은 흐려지고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질 때쯤. ‘카페 하동’ 사장님이 ‘계절 열매’에서 전시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가볍게 받아들였다. ‘첫 전시회를 이렇게 빨리 할 줄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게으름의 화신인 나는 정확한 계획도 컨셉도 없이 하루하루 작업만 했는데,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들을 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색이 너무 옅어서 별로고 어떤 놈은 형태가 마음에 안 들었다. ‘전시회를 못하겠다고 해야 하나...’ 생각하며 고민을 늘어놓다가 문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히려 웃기게 가면 재미있겠는걸?’
전시 제목은 ‘게을러서 죄송합니다.’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도자기들이 전시 공간에서 굴러다니면 웃기겠다고 생각하니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전시회 전날 도자기들을 눕혀 두고 그 옆에 몇 가지 말들을 적어뒀다. ‘도자기를 만져보시고 꼭 눕혀주세요. 게으른 놈들이라 누워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나는 원체 게으른 놈이라 무엇이든 대충 하고 치우기 일쑤였다. 게으름은 도자기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 쫓겨난 게 용할 정도다. 물레를 차고 난 후에는 청소도 하지 않았고, 집중력은 더럽게 짧아서 선생님 도자기를 다듬다 부셔 먹는 게 일상이었다. 잠도 무지하게 많아서 툭하면 지각을 했고, 공부에도 게을러 질문은 하지도 않았다.
결국 4년 차에 무자비하게 혼이 나고서야 속죄의 눈물을 흘렸더랬다. 가끔 그 당시 생각을 하며 향수에 젖곤 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질문할 것을... 더 열정적으로 배웠어야 했는데... 청소도 잘 할 걸... 게으름 적당히 피울걸...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여전히 게으른 놈이다. 잔머리만 늘어서 안 게으른 척~ 하는 게 일상이다.
전시회 첫날이 왔다. 느지막이 일어났더니 몇몇 지인분들의 연락이 와 있었다. 포스터가 너무 이쁘다, 기획이 좋다, 재미있다 등등 반응은 꽤나 뜨거웠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왜 도자기 예쁘다는 말은 안 해주냐는 것이다. (농담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기분은 좋았으니 됐다. 지난 몇 년간 꽤나 의기소침했었다. ‘도자기를 그만 둬야 하나?’하고 고민한 적도 있다.(길게 간 적은 없지만...) 재능 없는 사람의 서러움이랄까? 그러다 이윽고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정신을 놓아버린다.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참 괴롭다. 모든 일이 그렇겠으나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실로 어마무시하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엔 홀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막연히 미래에 대작가가 되어 있을 나를 상상하며... 실실 웃고 담배 한 대를 태운다.
끝으로, 전시회를 할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좋은 공간, 좋은 포스터, 좋은 사람들이 만나, 첫 전시회를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었다. 게으른 ‘노전요(蘆田窯)’에게 이렇게 큰 도움을 주시다니 감사하다. 올해는 더욱 노력할 테니 지켜봐 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게을러서 죄송합니다!”

2024년 2월 /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