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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 형제봉 주막, 없어질 위기에 처해

하동군이 선정한 핫플레이스임에도 마을사업으로 철거가 예정돼

하동군에는 지역민보다 외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들이 있다. 악양면에 위치한 형제봉 주막도 그중 하나다.
형제봉 주막은 2009년 30여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송영복 씨(66세)가 입석마을 구판장을 임대하여 문을 연 이후, 인근 귀농인들과 문화예술계 사람들에게 ‘봉주막’이라 불리며 사랑방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형제봉 주막과 주인장 송영복 씨
2010년 말에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책 <지리산 행복학교>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19년에 배우 공유가 광고 촬영을 위해 하동에 왔다가 형제봉 주막에 들른 뒤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지금도 배우 공유의 젊은 팬들 사이에서는 소위 ‘공유 성지(聖地)’라는 이름으로 하동관광의 필수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건국대 석좌교수인 조용헌 씨는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조용헌 살롱>에서 “심산주막(深山酒幕)이 다 없어졌지만 근래에 하나 자생적으로 복원된 주막이 형제봉 주막이다. 인생 체취가 배어있는 주막 주인의 기타 노래가 산중의 풍류를 느끼게 한다. 지리산의 유구한 주막집 전통을 잇고 있다.”라고 썼다.
14년 세월을 통해 하동을 대표할 만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형제봉 주막은 2023년 하동군이 선정한 15개의 핫플레이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형제봉 주막이 하동군 행정부서 간의 엇박자와 상반된 정책집행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문화관광과는 핫플레이스로 선정 vs 도시과는 마을사업을 위해 철거할 예정

지난 4월 하동군은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2023 핫플레이스 15곳’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핫플레이스는 신청서를 낸 관내 72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분석한 후, 홍보·관광업체 전문가 및 교수 등으로 구성된 전문심사위원의 최종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
지정된 곳은 홍보물 제작,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홍보하며 포토존·테마공간·핫플 인테리어 조성 등 시설개선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군 관계자는 “핫플레이스로 지정된 곳은 군 홍보물 등에 수록하게 된다. 매년 재심사를 통해 핫플레스를 변경 또는 추가 지정하고 매출액·방문객·SNS 노출 횟수 분석 등을 통한 성과분석으로 지속적인 핫플레이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4월에 하동군은 5,5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화개 법하마을, 악양 입석마을 만들기 사업 기본 및 시행계획 수립 용역’을 진행할 것을 공고했다. 이 용역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마을 개발위원회가 구상하고 있는 사업계획(안)에 따르면 형제봉 주막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주차장과 야외무대, 주민쉼터로 쓰일 데크 등을 만들 예정이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협약 공모사업’의 전제조건으로 2020년부터 지방으로 이양돼 하동군이 추진하는 사업이다. ‘2023 하동군 마을 만들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마을에는 2년간 마을당 5억 원의 사업비가 지원된다. 사업비는 지속 발전이 가능한 마을을 구축하기 위한 주민역량 강화 컨설팅과 기초생활기반 확충, 지역경관 개선 사업 등에 쓰이게 된다. 군 관계자는 “이번 마을 만들기 사업은 사업계획 수립 단계부터 철저한 교육을 통해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현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해 수립된 계획으로 소통·변화·활력으로 군민과 함께하는 하동 만들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동군이 ‘형제봉 주막을 핫플레이스로 선정하여 지원’하는 정책과 ‘마을 만들기 사업을 위해 형제봉 주막을 철거’하는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형제봉 주막을 운영하고 있는 송영복 씨에 따르면 마을 이장으로부터는 “오는 11월 5일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마을 만들기 사업 진행을 위해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구받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문화관광 및 슬로시티 담당자들과의 만남에서는 “철거는 아쉽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승철 군수 “하동 특유의 개성을 살린 핫플레이스 사업을 계속할 예정”

하승철 군수는 올해 3월 14일에 진행한 <뉴스원>과의 인터뷰에서 “문화관광도시로 하동군 이미지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SNS 등을 통해 관광객이 많이 찾고 하동 특유의 개성을 살린 핫플레이스 지정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각종 축제 및 주요 관광지는 반복적인 이슈 생성을 위해 지속적인 방송 매체 노출, SNS 온라인 매체에 집중해서 홍보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형제봉 주막은 방송 매체 노출이나 SNS에서의 언급 비중에 있어 하 군수의 바람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핫플레이스다. 단지 5억의 사업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형제봉 주막의 관광자원으로서의 유·무형적 가치를 일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엇박자를 초래한 책임 부서인 문화관광과와 도시과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인 정책조율이나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형제봉 주막 주인장 송영복 씨의 말이다. “나름의 상징성이나 보존가치가 있는 관광지를 만드는 게, 그게 쉽나? 없으면 만들어야 할 판에 있는 것도 없애려 하니, 되나 말이다. 여가 일반 막걸리집도 아니고 전국에서 막걸리 먹으러 일부러 찾아도 오고 그런 덴데. 그래도 이젠 방송매체, SNS 같은 데 이미 많이 알려져서 하동 홍보도 되고, 이런 데가 남아 있어야 동네도 살아나는 기라. 핫플레이스로 지정해 놓고 이제 헐어버린다고 하면 군청사업에도 역행하는 기라! 마을사업도 좋지만 이럼 안 되는 기라.”
하동군의 현명한 사업 조정과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2023년 11월 / 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