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순 어르신(1913년 출생, 1915년 신고)은 오늘도 툇마루에 나와 앉아 멀리 보이는 벌판에 차가 몇 대나 올라오고 사람이 얼마나 오가는지 보고 계신다. 한쪽 눈은 장작을 패다 찔려 거의 보이지 않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젊은이보다 더 좋은 시력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헤아리신다. 청력도 100세 넘도록 좋았지만 달팽이관이 빠졌다는 진단 이후로 소통이 쉽지 않다. 많은 이야기를 본인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대신 신우순 어르신 옆에서 하루 종일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두 딸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110세 신우순 어르신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10월 13일 인터뷰 당시 신우순 어르신의 모습, 어르신 왼쪽 큰딸, 오른쪽 작은딸. 신우순 어르신은 인터뷰가 끝난 후 약 10일 정도 누워 계시다 10월 29일 별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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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여분자, 79) 울엄마가 시집을 와갖고 시아부지 시어매 명이 을매나 길어갖고, 시아부지가 92세까지 살았어. 그때 92세면 지금 100세도 넘는기라. 시부모 모시고 을매나 고생을 했는가 몰라. 시삼춘, 시누이 졸졸이, 그때는 비누도 읍고, 불 때갖고, 재를 내가, 나무통에 넣어 머리에 이고 저 멀리 고동골 앞에 가는 고랑에, 옛날에는 요앞으로 개울이 흘러갔거든. 거기서 빨래도 하고 둠벙에 목욕도 하고. 참말로 시집을 많이 살았어. 울엄마 참 고생을 많이 했어. 그래 낼로 장매누리(맏며누리) 안 준다고 노래를 부르더만, 그게 안됐어.
신우순 어르신은 17살에 시집와 8남매를 두셨다. 남편은 화심마을이 고향으로 농부였지만 60대에 돌아가시고, 다른 자식 모두 앞세우고, 지금은 두 딸과 막내 아들이 엄마 곁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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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매일 6시에 출근 저녁 6시에 퇴근하고 그래. 아침밥 해 묵고 저녁까지 묵고 하동읍 우리집에 내려가지. 잠은 오빠하고 자고. 큰 올캐, 작은 올캐 다 병들어 죽고, 그 명을 울엄마가 다 사는 거 같애. 참 정정했는디 한번 아팠어. 귀에 달팽이관이 빠져갖고 병원에 입원했다 왔는디 그때부터 다리가 붙어버려 못 걸어. 그 전에는 지팡이 짚고 경로당에 가서 밥도 먹고 놀다오고 그랬어. 22년에 코로나도 했어. 100살 넘도록 문 앞에 차 세워노면 혼자 걸어가 타곤 했는데 이젠 못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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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딸(여진, 69) 음식은 육고기, 생선을 좋아해. 회하고 민물괴기는 안 먹어. 생선은 늘 안 빠져. 젊어서 틀니를 해 넣어서 그런가, 두 번을 했는데 이빨은 좋아. 옛날에 젊었을 때 가슴앓이라는 병이 있었어. 엄마 가슴이 아프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암것도 못먹어. 물만 먹어도 아파. 지금 보면 스트레스라. 시엄마, 시할매, 시삼춘 뭐 싹다 요 한집에 같이 사니깨 스트레스라. 그걸 많이 잡쉈어, 화풍단. 그걸 내 달아놓고 먹었어. 이젠 허가가 안 나 못 만든다카데. (화풍단은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식품으로 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언니가 옻닭을 해 드렸는데 그거 먹고 낫는지 그 담부턴 괜찮아.
신우순 어르신의 고향은 악양 신대리, 지금 살고 있는 화심마을로 시집와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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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울엄마 콧구녕에 바람 넣는 걸 제일 좋아해. 맨날 새몰(악양 상신대의 옛이름)가자 그래. 난 절대 멀미 안한다 그래. 그저 차만 타고 나가면 좋은기라. 그럼 10번도 더 가봤지. 길이름 동네이름은 싹 다 알고 있어. 한동네에 또순이가 4명이나 됐대. 신또순, 조또순, 강또순, 이또순이. 다 어디가서 살꼬, 다 잘 살고 있을까 그래. 다 벌싸 죽어 뿌리고 읍다 그러지. 그러면 죽긴 와죽어, 정신 없을 땐 그러지.
일제 강점기와 6.25 사변을 다 겪고 코로나도 이겨내신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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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인민군이 여기 총을 쪼로로 세워놓고 밥 해먹고 가고 그랬어. 나는 무서워서 저 뒤에 숨어 있었어. 저 대밭 뒤로 피난도 갔어. 거기 큰 굴이 있어. 인민군한테 동네 사람들 양식 다 뺏겼는데 우리 할매는 을매나 영리한지 하나도 안 빼앗겼는기라. 새끼덜이 서이나 있는디 요양원엔 우리도 안 보내고 자기도 안 갈라그래. 셋 중의 하나만 안 보여도 내 기둘리고 찾아. “돌이(아들) 어디 갔냐? 올 때 됐는데 와 안 오노?” 하고. 눈에 안 보이면 찾아. 참 잘 자, 머리만 땅에 닿으면 주무셔. 뭐 티비도 보고. 요즘엔 아침으로 안 일어나시려고 해. 하루 두 끼만 먹지, 중간에 간식 좀 먹고. 군청에서 저기 멀리 있는 변소를 바로 방 옆에 옮겨주고 양변기도 설치해 줬어. 정지(주방)도 불때는 거였는데 싱크대 놔주고. 이불하고 음식도 많이 갖다 주고. 변은 3일에 한 번씩 보는데 변비도 없어. 혈압약 하나 먹는데 한 번 먹으면 계속 먹어야 한다데. 그니까 못 걷는 거 하고 못 듣는 거 말고는 불편한 거 없어.
남들보다 힘든 층층시하 시집살이를 다 견디시고 일제 강점기, 6·25도 겪으시고, 힘든 코로나도 이겨내시고, 남편과 자식 앞세우신 신우순 어르신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내가 알아낸 건 옆에서 매일 밥을 같이 먹고 같이 자는 두 딸과 아들이 함께 있다는 것 외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