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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나무는 동강나고, 끊어진 버스는 오지 않고...

[ 북천면 / 금촌마을 ] 산초 재배로 인한 환경 훼손, 이용자 적다고 버스 운행중단

하동군 동남쪽에 위치한 북천면은 봄, 가을에 열리는 양귀비와 코스모스 축제로 잘 알려져 있다. 북천면은 농경지보다 임야가 많고 16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하나인 금촌마을에서는 박나리(35) 씨가 하동군에서 최연소 이장으로 선출되면서 동네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금촌마을은 46세대가 등록돼 있지만 실 거주인은 30명 정도이며 대부분이 고령의 할머니이고 남자는 극소수다. 그러다 보니 박 이장이 마치 딸과 같이 주민의 손과 발이 되어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산초 재배를 위한 대규모 벌목 현장. 이곳은 하동군 소유의 군유림으로 현장 바로 아래에 금촌 마을 주민이 이용하는 식수원이 있다. 최근 산초 재배로 인한 식수원 오염 문제가 제기 되었다.
“이장 되기 전에는 마을에 문제가 있는지 전혀 몰랐죠. 지금 마을 산 정상에 산초나무를 심어 놨는데, 문제는 그 밑에 마을 식수로 사용하는 물탱크가 있어요. 저렇게 많은 산초나무를 키우려면 농약을 쓸 텐데 그 농약이 땅으로 다 스며들어 식수에 영향을 주는 거죠. 큰일이다 싶어 식수로 사용할 관정을 다른 곳에 파기로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어느 날 보니 산 위 나무를 저렇게 베어 버려 보기 정말 안 좋아요. 근데 산이 아무리 누구의 소유라 해도 공공재인데 한 번의 설명이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해도 되나요?” 마을 산 정상이 민둥산이 되도록 마을 주민에게는 어떤 설명도 없었고 마을 식수원이 있는지도 잘 알아보지 않은 것에 대해 박나리 이장은 분개한다.
마을과 바로 접해 고개만 들면 보이는 산은 단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는 가족과 같은 존재다.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한 고민도 들어주고 기쁨도 함께 나누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런 산의 머리가 어느 날 훌러덩 벗겨진 것을 본 금촌마을의 터줏대감 장씨 할머니(80)의 마음은 편치 않다.
“여기서 보면 저기가 다 산초단지야. 바로 아래 물탱크가 있는데 그것도 지금 문제라. 산초는 이제 막 심어놨어. 산초도 농약을 칠 텐데 다들 걱정이지... 농약치는데 탈이 없을까? 산림조합에서 한 거야. 나무 싹 베고... 우리 마을하고 아무 관련도 없는 거 해놓고, 물탱크만 오염시키고 있잖아.”
금촌마을 장씨 할머니가 마을 앞산을 바라보고 있다.
“버스도 큰 문제예요. 버스가 없어져서 할머니들이 병원 가시는데도 힘들고 하동장이나 횡천 경매장도 못 가시죠. 할머니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시는데. 그리고 나물 같은 거 모아서 하동장에 가서 팔고 사람 구경하시며 용돈버는 게 낙이신데 그걸 못하시는 거죠.” 어느덧 동네 노인들을 부모님같이 생각하고 있는 박 이장의 걱정은 자식 이상이다.
“8시에 여기 지나가는 버스가 있어서 그거 타고 횡천 가면 8시 반에 청학동에서 오는 버스 타고 하동읍에 나갈 수 있었어. 근데 작년부터 없어졌지. 아주 옛날에는 바로 하동읍에 가는 버스도 있었어. 갈아타고 가는 버스마저 없어져서.... 하동장엔 버스 없으니 못 가지. 한번 가려면 저기 저 멀리 사거리까지 걸어가서 진주서 오는 택시가 있어, 그거 타고 횡천에 가서 청학동에서 오는 버스 타고 장에 가지. 저전거 있는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할머니 태우고 횡천까지 가. 나는 영감도 없으니 못 가지. 우리 마을도 그렇고 여기 마을 다 그래. 8시 차 그게 있어야 해. 하동읍 가면 거기서 마을버스가 12시 40분에 있어. 그걸 타고 오면 되거든. 차가 없으니 고기도, 갈치 한 마리도 못 사먹는 기라. 푸성귀나 뭐 좀 가져다 장에 팔려고 해도 차가 없응께 못하는 기라. 암것도 못하고 있잖아.”
금촌마을 버스 정류장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았으면서도 인생 말년, 작은 즐거움이던 장날 나들이도 못 하게 된 장씨 할머니는 그래도 “나 하나 땜에 버스가 다니게 할 수는 없다.” 며 남 걱정이 먼저다.
경관이나 조림(造林)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산초나무를 군유지에 심은 사연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 저러한 이유로 기존의 나무를 베고 산초나무를 심게 됐다.”는 최소한의 설명이라도 들었다면 노인들의 걱정은 덜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소통은 만사형통이지만 불통은 오해와 불신을 낳지 않던가.
또한 매일은 아니더라도 장날만이라도 버스가 운행된다면 마을 어르신에게 삶의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소멸되어가는 작은 마을을 오랫동안 지키며 살아온 주민의 권리와 편의를 먼저 생각한다면 멀리 있는 자식을 대신해 군이 효도를 베푸는 일이 될 것이다.

2022년 8월 /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