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주민들이 화개천 홍수방호벽을 반대하는 이유
화개면 곳곳에 화개천 방호벽 설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게시되었다. 주민들은 방호벽 설치를 저지하기 위해 긴급 주민총회를 열어 반대대책위를 구성했으며 반대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20년 홍수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던 화개장터 일대에 대대적인 재해예방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동군에서 194억 5200만 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지난 7월 14일 열린 화개천 재해복구공사 실시설계용역 3차 주민설명회에서도 주민들은 전면백지화를 요구하였으며, 현재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일시 중단된 상태이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홍수방호벽을 오히려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화개천 재해복구사업 구간과 방호벽 설계안 예시
문제가 되는 것은 화개천과 접하는 지역에 설치하는 홍수방호벽이다. 실시설계(안)에 따르면 200억 원을 들여 지면으로부터 최대 4m 높이 방호벽을 세운다는 것이다. 건물로부터 불과 4m 떨어진 곳에 4m의 담이 생긴다면 건물이 방호벽에 갇혀 답답해지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하동군은 투명 강화유리로 제작하여 경관 저해를 최소화한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화개장터와 터미널에서 바라보던 섬진강과 화개천의 아름다운 풍경은 유리벽 너머로 뿌옇게 보일 것이고, 바람길을 막아 주거환경도 크게 나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방호벽 설치 반대의 더 근본적인 이유는 홍수방호벽 설치가 전혀 필요없다는 데 있다. 화개면 주민들은 2020년 8월 홍수피해의 원인을 섬진강댐의 방류량 조절 실패로 인한 인재(人災)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홍수의 원인 : 댐방류수 조절의 실패
댐 관리 규정에서는 방류 시작 3시간 전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제 방류량, 통보한 방류량 그리고 화개장터가 있는 화개면소재지 일대의 침수 상황을 살펴보았다.
2020년은 6월 24일부터 50여 일간 장마가 이어졌다. 특히 기상청에서는 8월 7일~8일 이틀 동안 섬진강 유역에 최대 465mm의 집중호우를 예보했다. 그런데 이 때 수자원공사는 섬진강댐의 담수율을 예년보다 215.5% 높게 유지하고 있었다. 댐의 방류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급격한 방류량 증가로 침수 본격화
[표 1] ‘2020년 8월 섬진강 범람 수해 극복기록(하동군, 2021)’, ‘2020 구례지역 섬진강 수해백서(구례군, 2021)’
[표 1]을 보면 7일 오전까지 섬진강댐은 199m3/s의 물을 방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화개보건지소 앞 주차장이 침수되기 시작한 8월 7일 21시, 577m3/s로 방류량을 늘렸다. 심지어 화개장터가 본격적으로 침수되기 시작한 8월 8일 8시에는 방류량을 1868m3/s로 늘리겠다는 것을 불과 8분 전에 통보했다. 실제 방류량이 1868m3/s에 달하지는 않았지만 급격히 증가한 방류수로 인해 화개면소재지 일대는 본격적으로 침수되기 시작했다.
광양만 수위가 가장 높은 시간에 증가한 방류수가 화개 도달
8월 8일 8시는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는 시간이었다. 섬진강댐의 방류수는 보통 3시간 반에서 4시간이 걸려 화개면에 도착한다. 8시에 증가된 방류수가 화개면에 도달하는 12시 무렵은 만조 시각이었다. 바닷물의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시간에 방류수가 도착한 것이다.
송정수위표 수위계의 고장과 계속된 댐방류량 증가
8월 8일 10시에 방류한 섬진강댐의 물은 14시 무렵 화개면에 도착한다. 이때 구례군 송정수위표의 수위는 19.76m였다. 이후 수위계는 고장 났다. 수위계의 고장으로 하류 지역의 하천수량을 파악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것은 섬진강댐의 방류량 결정에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14시 무렵 화개면 소재지는 전면 침수되었다. 계속해서 수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섬진강댐에서는 12시부터 1797m3/s의 물을 방류하기 시작했으며 다음 날인 8월 9일 07시까지 1797m3/s에서 최대 1868m3/s의 물을 방류한다.
화개면소재지 일대는 침수가 지속되다가 8월 9일 오전 0시 4분 최대 만조가 지나고 바닷물의 수위가 낮아지는 간조가 시작되어 비로소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방류수가 최대에 달했음에도 화개면소재지의 물이 빠졌다는 것은 이전의 방류량 결정에서 광양만의 수위를 고려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잘못된 원인 진단으로 파괴된 섬진강 모래톱과 파괴될 주민들의 삶터
수자원공사의 판단 실패를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댐의 저수량과 방류량 그리고 중·하류 지역의 강우량, 바닷물의 수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것이 화개면소재지 일대의 침수에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화개면 주민들은 판단하는 것이다.
화개천 홍수방호벽 반대 현수막
하지만 정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2020년 홍수의 원인으로 부실한 제방과 하천에 쌓인 모래를 지목했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대상에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하동군에서 최고의 관광자원으로 자랑하는 섬진강의 은모래는 준설되었고, 결국 아름다운 모래톱은 파괴되었다. 이제 또다른 홍수의 원인인 부실한 제방을 해결할 차례이다. 그래서 2020년 홍수의 최대 피해지역인 화개면소재지 일원에 제방을 축조하겠다는 것이다.
하동군은 화개천방호벽 사업이 강행될 경우 4m의 거대한 담장 안에서 갇혀 살아야 할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홍수의 원인부터 재점검해야한다. 섬진강 모래톱 파괴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