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
이런 숱한 질문에 적절히 대답하는 것이 ‘귀촌한 청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과제이다. 아무런 연고도, 담보된 직장도 없는 하동으로 온 이력이 독특했던 것인지, 아니면 삼십도 되지 않은 ‘얼라~’같은 청년이 드물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아닌 척하며 뜨거웠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지하철이 있는 도시에서만 나고 자라서 돌아갈 곳이 촌(村)은 아닌지라 내게 ‘귀촌’이라는 말은 영 맞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가 ‘귀촌한 청년’이기를 바라는 것마냥 계속 내 앞에 그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아~ 나는 자연인이다, 뭐 그런 거 할라는기제? 그런데 와 화개나 악양 이런 데로 안가고?”
‘리틀 포레스트’와 ‘나는 자연인이다.’ 이 또한 나를 두고 자주 들려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욕구나 산골 생활의 로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삶터를 옮긴 이유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하늘을 가리는 빌딩 숲과 거리두기란 없는 빽빽한 지하철 그리고 도시의 무정함이 숨 막혀서랄까. 이런 이유를 순진하게 다 말해줘도 사람들은 “누구는 서울을 못 가서 난린데~!”하며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순간 나는 집 바로 앞에 이마트24, GS25, CU, 미니스톱이 다 있고, 집에는 와이파이도 잘 되고, 차로 조금만 나가면 좋은 카페도 수두룩하다는 말을 빠르게 늘어놓곤 한다. 그리고는 아차! 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너른 산과 반짝거리는 강을 끼고 살고 있으면서 온갖 도시적인 산물로 자랑해대는 내 모습이 모순덩어리 같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뒤져가며 집을 어렵사리 구했고, 곰팡이 가득한 시골집을 한 달 내내 고쳤다. 월세를 내야 하니 안정적인 수입은 필요해서 직장을 구했고, 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일처리 방식에 깜짝깜짝 놀라는 날을 보내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힘든 일이 겹쳐 서러운 날에는 ‘나 다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한다. 그렇지만 잠시 밤 산책을 하다보면 그 마음이 가라앉는다.
푸른 논두렁을 지나 낮은 주택 골목길을 오가는 출근길. 마을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러 오는 담 없는 초등학교 운동장. 아침에 일어나 빨래를 널고, 햇볕 냄새나는 빨래를 개고, 집 안마당에 놀러 온 고양이와 새들에게 말을 거는 일상. 무엇보다도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시키는 일의 비중을 늘려가는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는 것이 만족스럽다. 좋은 학벌, 번듯한 직장, 서울의 집. 그 무엇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는데 말이다.
17살부터 집 밖에 나와 살면서, 내게는 안심하고 머무를 나만의 방이 없었다. 3년의 기숙사 생활과 4년의 친척집 하숙을 거쳐, 직장을 다니며 처음으로 번듯한 집을 구했지만 어느 곳에도 마음을 착 붙이지는 못했다. 그 무렵, 나는 고향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물질적인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래서 어디에 살던간에 안심하고 머무를 마음의 집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남몰래 싹틔웠다. 그 싹이 이곳 하동에서 틔워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시골살이를 좋아해서, 뭔가 큰 뜻을 품고 이곳으로 온 줄 아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이 바라는 ‘귀촌한 청년’은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바꾸려고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즐기기만 하러 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너무 애쓰지 않게, 그러나 아주 정성스럽게 살아내려 노력할 뿐이다. 섬진강변을 산책하며 마음의 집을 만들어갈 꿈을 키워나갈 수 있음에 행복하다.
민주
요가를 합니다. 아이들이 맘껏 웃고 힘껏 자랄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산과 강이 품어주는 이곳에 와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