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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앞으로도 웬만하면 하동에서 살고 싶다

나는 하동에서 태어나 22년째 악양에서 살고 있다. 악양중학교를 나와 곡성 조리고로 갔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가 하고 싶었고, 하동에서 적당히 먹고 살아가는 소박한 요리사를 꿈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졸업 후 현장으로 갔고 대학도 안 갔다. 지금도 별로 대학 생각은 없다.
왜 어렸을 때부터 하동에서 살고 싶었을까? 그때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안다. 하동은 편하다. 편의점, 배달, 많은 편의시설 등이 있어서 편하다는 게 아니라 마음이 편하다.
22살짜리가 이런 말을 하면 나이 드신 분들은 “너 같은 젊은 사람은 도시로 나가서 경험을 쌓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거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하고 흔히들 말하는 도시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코로나와 회사 사정으로 인해 오래 해보진 못했지만. 오히려 도시를 떠나 섬진강에 도착했을 때 활짝 펴있던 벚꽃을 보며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편함을 얻었다. 성공한 삶보다 정서적으로 편하고 여유로운 삶을 내가 더 추구하기에 하동에서 살고 싶다.
지금은 국방의 의무로 악양면 사무소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9시에 출근, 6시에 퇴근, 집에 도착하면 씻고, 밥 먹고, 친구들과 게임하다가, 잘 시간 되면 자고, 다시 아침에 눈 뜨고를 월~금 반복한다. 재미없다.
도시 같으면 6시는 놀러 다녀도 괜찮은 시간이다. 새벽까지 버스와 지하철이 있고 놀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악양에서 6시는 놀고 싶어도 차가 없다면 나갈 수도 없고 들어올 수도 없는 시간이다. 놀 사람도 없다.
또래 사람을 못 만나 미쳐가던 시점에 동네 형, 누나들이 ‘하동의 소멸을 막는다’는 의미로 ‘지리산 소멸단’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모일 장소와 명분을 마련해 줬다. 시간 소멸이라는 이름 아래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고 논다. 한 달에 한 번 재밌는 하루가 생겼다.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생겼다면 한 달에 한 번 목요일 장미 분식 옆 두루뭉술에서 모이니, 하동에 사는 청년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두루뭉술에 모인 하동 청년들
하동에서 살아갈 나는 고민이 많다. 작게는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부터 크게는 당장 ‘전역하면 무엇을 할지, 우리가 살아갈 하동에 비전이 뭐가 있을지, 그때까지 지구가 버텨줄지...’ 그 중에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나 같이 하동에 살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다 이름만 알고 있던 동네 형이 카페를 오픈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신기했다. 나 말고도 하동에 다시 들어와서 살려는 사람이 있었구나. 관심이 생겼다. 그 카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일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시간이 지나 사회복무를 하고 있을 무렵에 ‘다른 파도’라는 회사를 만들어 정부에서 진행하는 청년 마을 산업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방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고, 다시 하동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눈으로 보니 적어도 하동이 사라질 일은 없을 거 같아서 안심했다.
아마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흔히들 MZ 세대라 불리는 우리는 점점 더 귀농, 귀촌 아니면 다시 자신의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일이 많아질 거 같다. 그런 때가 하동에도 오면 용기 내서 들어온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폐사하기 전에, 배척하지 않고 오지랖 아닌 정도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김근오

2001년 12월 20일생, 전남조리과학고등학교 졸업, 악양면사무소 사회복무요원

2022년 8월 /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