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느린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습관 중에 어느 하나는 작고 느린 삶에 어울리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여, 오래도록 정리하지 않은 가방을 뒤지듯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늘 어렵습니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상당 부분 커피 때문입니다. 주로 직접 볶은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벌써 7년 가까이 된 습관입니다. 멸치육수를 낼 때 사용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망을 이용하여 만든 로스팅 기계에 휴대용 버너를 이용하여 원두를 만들어 냅니다. 한 번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두의 양이 많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은 로스팅하게 됩니다.
스테인리스 망으로 직접 제작한 로스팅 기계로 원두를 볶는다.
원두가 되기 전의 커피콩을 ‘생두’라고 하는데, 이 생두를 볶는 일에도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먼저 필요한 생두를 사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주문을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볶아야 합니다. 집안에서 볶았다간 집안에 커피 구름이 둥둥 떠다니기에, 집 밖에서 하는 일로 분류를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여름에는 더위와 함께, 겨울에는 추위와 함께 커피를 볶아 냅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새소리와 커피콩이 스테인리스스틸 망을 때리며 내는 소리의 조화가 묘하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간을 만들어 냅니다.
처음에는 초록색 빛이던 생두가 불을 만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타다닥 팝콘 튀기는 소리를 내고 흰색 연기를 피워내며 갈색빛으로 변합니다. 이 타다닥 소리가 날 때쯤 재빠르게 장갑을 낀 손으로 뜨거워진 스테인리스 망을 열어서 원두를 빼내야 하는데, 너무 일찍 빼내면 약간 풋내가 나고, 너무 늦게 빼내면 원두 고유의 향을 잃어버립니다. 경험으로 체득한 감각으로 꺼낸 원두를 넓고 오목한 채반에 펴두고 입바람으로 후후 불며 커피콩 껍질을 날리면 비로소 아침에 커피를 내릴 때 쓸 원두가 됩니다.
모카포트를 이용하여 에스프레소를 마시기도 하지만, 주로 드립으로 원두를 내려 마시는 것을 선호합니다. 커피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게 얼마큼 생두를 로스팅했는지에 따라 맛이 많이 바뀌지만, 얼마나 미세하게 갈았는지, 얼마나 뜨거운 물에,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가는 물줄기에 내렸는지에 따라서도 맛의 변화가 생깁니다. 저는 원하는 맛과 향에 대한 집요함이 크게 없기에 마음 가는 대로 커피를 내립니다. 그래도 맛은 좋습니다.
인스턴트 커피와 비교를 하면 확실하게 느린 삶의 습관입니다. 반면 필요한 도구, 필요한 환경을 생각해 보면 작은 삶인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커피 농가를 생각하고 탄소 발자국을 생각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삶이 진정 작고 느린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글의 후미에 떠오르네요. 그럼에도 일어나기 어려운 아침에 긴 호흡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작고 느린 삶에 대한 저의 의심이 커피의 향처럼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