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나무, 길 이야기’ 3
마을 분들이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몇 년 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의 병문안을 가는 길에 그 나무를 보았다. 마음이 무거웠던 나는 그곳에서 잠시 쉬어갔다. 나무의 너른 품에 몇백 년은 됐으리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수령 130여 년이었다. 이 나무는 북천면 남포마을 버스 정류소 근처에 있다. 도로가여서 누구라도 지나가다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그 나무 그늘에 있으면 굳이 에어컨 켠 실내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나무의 이력을 마을 사람들이 훤히 아는 거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명식이라는 분이었고 이병주 소설가의 친척이었다. 나무 앞에는 최증수 시인의 ‘내고향 남포마을’이라는 시비가 있었다. “산 좋고 물 맑아 삼재 모르니 살림살이 탁탁하고, 순박하고 어진 마음으로 함께 즐기는 신나는 마을” 남포마을 느티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 어르신 다섯 분을 만났다.
그분들의 자랑도 이와 같았다. 남포상회 차봉순(90세) 씨의 표현을 빌자면 이 동네는 나무 덕분인지 몰라도 술 먹고 땡깡부리는 사람 못 봤고, 싸우고 노름하는 사람 못 봤단다. 큰 사고도 물난리도 없는 평화로운 동네다. 착한 사람들이 정성껏 돌본 나무와 더불어 다툼 없이 유순하게 살았단다. 하동의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인 이홍식 옹도 말년을 이 마을에서 보냈다. 나무 아래에 그의 추모비가 서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백중날이면 온 마을이 잔칫날이었다. 제를 주관하는 분들은 일주일 동안 궂은 것 보지 않고 맑고 청정하게 지내다 목욕재계하고 갓을 쓰고 하얀 도포를 입고 격식을 갖추어 나무에 제를 지냈다. 막걸리 서너 말을 부으며 마을과 나무와 주민의 안녕을 기원했고 온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먹고 즐겼다. 여전히 백중날이 면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약식으로 행사를 한다.
이 나무도 한때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 나무 아래서 눕고 쉴 수 있도록 바닥에 시멘트를 깔았다. 그러자 몇 년 뒤 나무가 시름시름 앓고 잎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시멘트 때문에 나무의 뿌리가 숨쉬기 어려워 죽어간다는 것을 깨닫고는 바닥의 시멘트를 몽땅 깨버려 나무를 살렸다고 한다. 다시 살아난 나무이기에 주민들은 더 귀하게 대접했다.
이 마을에 유독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나무의 기운인가? 90살이 넘는 어르신들이 9~10명이 되고 최고령 할머니는 101살이라고 한다. ‘남포상회’의 간판 글자가 [남ㅍ 호]만 남도록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그 그늘 아래서 오순도순 나누던 정담들과 더불어 새댁은 할머니가 되었고, 나무의 초록은 더 깊어갔다. 박명재(86세) 씨가 소녀같은 얼굴로 ‘이 나무 그늘에서 잘 놀 수 있어 항상 감사하지요.’라고 말할 때 ‘감사’라는 단어에 울림이 일었다.
나무와 사람이 어울려 주거니 받거니 의지한 시간은 그대로 마을의 역사가 되고 어르신의 삶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느티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나 또한 감사했다. 정차희(80살) 씨의 마무리 인사로 글을 맺는다. “이 나무 아래는 누구나 지나가다가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니 많이 오셔서 쉬다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