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금남면 주민
지난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다. 나라 전체 투표율은 67%로, 총유권자 약 4428만 명 중 2966만 명이 참여했다. 전체 유권자의 1/3은 투표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이가 투표로 세상이 바뀐다고 믿지 않거나 ‘아무’ 생각 없다. 물론, 참여하고 싶어도 사정상 못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투표 불참자가 너무 많다. 한국 민주주의, 갈 길이 멀다.
다음, 개표 결과를 보면, 민주당이 지역구 161석, 비례대표 14석으로 총 175석을 얻었다. 국힘당은 지역구 90석, 비례 18석, 총 108석을 얻었다. 조국당은 비례만 12석을, 개혁신당은 지역 1석, 비례 2석, 총 3석을 확보했다. 새미래와진보당은 각기 지역 1석씩 획득했다. 녹색정의당은 0석으로, 국회에서 퇴출됐다. 안타깝다.거대 양당 체제의 희생양이다!
더 안타까운 건, 사천-남해-하동 선거구 투표결과다. 기호2 서천호 국힘당 후보가 유효 투표 11만 6480표 중 6만 4750표를 얻어(55.6%)당선됐다. 기호1 제윤경 민주당 후보는 전체의 32.3%인 3만 7664표를 얻어 낙방했다. 기호7 무소속 최상화 후보는 12.1%인 1만 4066표를 얻었다.
예전부터 하동 지역은 보수세가 강하다 했지만, 이번 결과를 보면 특히 갑갑하다. 물론, 하동 지역은 총유권자 3만 8193명 중 2만 8405명이 투표에 참가, 투표율 74.4%로 남해 71.9%나사천 67.2%보다 높았다. 후보 선호도를 떠나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유감이 크다.
첫째, 평소 여론 조사에서 우세하던 최상화 후보가 국힘당 공천 과정에서 ‘낙하산’을 타고 온 서천호 후보에게 밀렸다. 서 후보는 오랫동안경찰 공무원이었다가 국정원 2차장까지 지냈다. 널리 알려진 바, 그는 2011년 이명박 정부산하 부산경찰청장 재직 시 (조현오 전 경찰청장 지휘로) ‘부산 희망버스’ 시위(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자의 대량해고 반대 농성)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댓글 작성을 지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항소심(2023. 5)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또,2013년 박근혜 정부 윤석열 검찰팀의 ‘국정원여론조작 댓글 수사’ 방해(가짜 사무실, 허위진술 조작 등) 의혹으로 검찰 조사도 받았다. 그렇게 “국가에 충성”한 덕(?)에 형을 받았는데, 2024년 2월 초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 사면했다. 구속시킨 자가 나서서 풀어준, ‘희귀한 미덕’? 서 후보는 4월 총선 출마가 불가했는데, 2월 특별 사면에 이어 여당 공천까지 받아 일사천리로 당선됐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하동’에서 일어난 불가사의다!
둘째, 사천-남해-하동 지역은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갈사만 산단과 대기오염, 하동화력과 삼천포화력, 광포만 보전 문제 등 지역 이슈가 많은 편이다. 물론, 인구 감소나 교육, 도농 격차 해소 문제 역시 크다.
흥미롭게도 이런 민생 문제들과 관련해 세 후보 간 정견 차이를 검증할 수 있는 충분한 토론이 없었다. 선거에 임박해 형식상 치러지는 법정 토론 외에, 평소에 유권자인 시민들과 (미래의) 후보자 간 충분한 교류와 소통이 있어야 마땅하다. 후보자들의 깊이 있는 철학과 견해가 별로 공론화하지 못한 채 ‘갑작스레’ 현수막이 내걸리고 얼렁뚱땅 투표만 치른 느낌이 있다.
이미 오래 전,장 자크 루소는 말했다. “국민은 투표일만 주인이고 투표가 끝나는 순간 노예가 된다.” 그러나 나는 “투표 전에도, 투표 후에도 무시당한 기분”이다. 후보들도 문제지만, 시민사회단체 역시 성찰할 부분이 많다.
셋째, 민주주의의 성숙이란 관점에서 보면, 사천-남해-하동 지역은 이번 선거에서 ‘강자 동일시’ 심리가 유달리 강하게 나타났다. ‘강자동일시’란 쉽게 말해, ‘강자’에게 붙어야 작은 떡고물이라도 챙긴다는 심리! 일제 때 친일파나 해방 이후의 친미파, 그리고 박정희 시절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친미주의 및 권력 지향 출세 지상주의가 바로 ‘강자 동일시’의 산물이다. 최근의 ‘미-일-한 군사동맹’ 역시 같은 심리다.
흥미롭게도, 사회적 약자들은 늘 강자들에게 ‘밥’이 되면서도 스스로 ‘강자 동일시’에 빠진다. 즉, 자신을 괴롭히는 고약한 강자 앞에 벌벌 떨면서 눈치보다가 센 놈에게 빌붙어 목숨만 이어간다.
만일 약자들이 뭉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옴’을 온몸으로 보인다면 더 이상 강자들도 강자 행세를 못할 것이다. 강자가 강자로 군림하는 근본 원인은, 강자가 그 자체로 세서가 아니라 약자들이 강자를 ‘알아서’ 모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상품 속에 가치(value)를 불어 넣는 것, 또 우리가 화폐에 믿음(credit)을 줌으로써 경제를 살리는 것과 같다. 즉, 사람들이 그 대리인(후보자)에게 파워(power)를 위임함으로써 스스로 정치적 소외를 경험하는 것, 이것이 ‘강자 동일시’ 심리의 고약한면이다.
민주주의(democracy)란 민중이 스스로 통치하는 것이지, 대리자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게 아니다.